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A씨(33)는 요즘 퇴근 후 자기소개서 작성에 여념이 없다. 이직이 아니라 같은 회사 내 인공지능(AI) 관련 부서로 옮기기 위해 사내 공모에 지원하려는 것이다. 해당 부서로 이동을 원하는 직원들이 많다는 소식에 A씨는 1단계 서류 작성부터 ‘전력 투구’하고 있다 그는 “회사 내 이동이라 부담이 덜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부 경쟁이 치열해 유료로 자소서 첨삭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27일 전자·IT업계 따르면 최근 여러 기업들이 사내 공모 제도를 통해 내부 인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팀원을 충원하려는 부서들의 수요를 모아 1년에 두 번 ‘잡포스팅’이란 이름으로 사내 공모를 한다. 지난 2월 상반기 사내 공모를 마쳤고, 하반기에 한 번 더 진행할 예정이다. LG전자도 지난달 사내 공모 절차를 마무리했다. 전자업계가 상·하반기 정기 공모 방식을 택하는 데 비해 IT업계는 연중 수시 공모 형태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내 공모를 통한 채용 프로세스는 통상 ‘공고 게시→서류 접수→면접→선발’ 순으로 신입사원 공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류 전형에는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 입사 후 직무 관련 포트폴리오를 주로 제출한다. 경력기술서에는 소속 팀에서 본인이 맡았던 구체적인 프로젝트와 성과를 서술해야 하고, 면접에서는 지원 동기를 강조해야 한다. 일부 업체의 경우 최종 선발 직전 비공식적인 평판 조회까지 이뤄진다고 한다.
사내 공모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공모 시즌이 되면 희망 직원들은 수험생 모드에 돌입한다. 자기소개서 유료 첨삭 사이트에 등록하거나 직무 관련 학원에 다니는 등 스펙을 쌓는 이들이 적지 않다. 평소보다 근태에 더 신경 쓰고, 공모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연차나 휴가 사용을 뒤로 미루기도 한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사내 채용은 어차피 내부 인력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 스펙은 거의 비슷하다”며 “결국 입사 후 성과가 당락을 가르는 핵심이라 온라인에선 직무 경험을 강조해주는 사내 공모용 자소서 쓰기 강좌도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사내 공모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분야는 사업 기획 및 AI 관련 부서다. 사업 기획은 본인의 이름을 내건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통상 인기가 있다. AI 관련 부서는 무조건 경험해봐야 하는 필수 업무로 꼽히면서 전공과 상관없이 지원자가 몰리는 상황이다. 문과 출신 직원들은 사비로 코딩학원까지 등록해가면서 AI 관련 부서로 이동을 준비하는 사례가 잦다.
사내 공모는 정원이 한두 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경쟁률이 수십 대 일까지 치솟기도 한다. 한 IT업체 관계자는 “사내 공모 확산은 회사 인사 효율성 제고와 직원의 성장 욕구가 맞물린 결과”라며 “‘입사 후 또 한 번의 입사’라고 불리는 사내 공모 경쟁률은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