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직전의 회사와 비슷하다.”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된 한 판사는 최근 형사합의 재판부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각 재판부는 일주일 중 4일을 공판 진행에 쏟아부으며 밀려드는 주요 사건을 겨우 막아내는 실정이다. 서면 검토는 재판이 끝난 저녁 시간과 주말로 넘어가기 일쑤다. 조만간 ‘3대 특검’(내란·김건희·채해병)의 공소제기가 본격화되면 재판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비상계엄 관련 재판들은 이미 장기전이 예고된 상황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만 하더라도 최초 신청된 증인 38명을 심리하기 위해 연말까지 매주 기일을 잡아둔 상태다. 여기에 내란 특검은 72명의 추가 증인까지 신청했다. 이 사건을 맡은 형사25부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갈 길이 멀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비상계엄 관련 추가 기소된 사건들도 속속 법원으로 넘어오고 있다. 앞서 특검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추가 기소한 윤 전 대통령 재판은 형사35부(재판장 백대현) 심리로 다음달 19일부터 시작될 예정이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추가 기소 사건은 각각 형사34부(재판장 한성진)와 형사21부(재판장 이현복)에 배당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특검 사건들이 밀고 들어오면 기존에 심리하던 일반 사건 일부를 불가피하게 미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토로했다.
특검 관련 재판이 아니더라도 서울중앙지법의 형사합의 재판부는 이미 포화 상태다. 지난해 1574건의 사건이 접수됐는데,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2023년 11월 보이스피싱 형량이 1년 이상 징역으로 강화되면서 그간 단독재판부에서 처리하던 보이스피싱 사건들이 대거 합의부로 넘어온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법원조직법은 1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사건은 원칙적으로 형사합의부에서 심리토록 하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 장기화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보이스피싱 사건을 단독재판부에서 심리할 수 있도록 예외를 두는 방안이 거론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수거·인출책 재판의 경우 판사 1명이 단독재판부에서 문제 없이 처리해온 사건”이라고 말했다. 민사합의 재판부처럼 형사 사건도 상대적으로 단순한 사안의 경우 단독재판부에서 심리할 수 있도록 재량(재정단독)을 부여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장기적으로는 법관 증원에 맞춰 형사합의부를 증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