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덕의 AI Thinking] AI 슈퍼 인재 쟁탈전… 우리 실정 맞는 ‘K-인재전략’ 세워야

입력 2025-07-29 00:35

글로벌 빅테크들 거금 들여 참전
韓 자금력 경쟁으로는 승산 없어
우리만의 독보적인 챌린지 제공
창업 기회 제시 등 여러 방안 고민

미국과 중국의 기업들이 AI 핵심 인재 유치 경쟁에 나선 모습. 필자가 오픈AI의 텍스트 기반 영상 생성 AI ‘소라’로 만들었다.

AI 인재 영입에 천문학적 자금 투입

AI 인재 전쟁이 한창이다. 최근 메타가 스케일AI를 인수하는 데 무려 143억 달러(약 19조원)라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메타의 이번 투자가 스케일AI라는 기업을 샀다기보다 ‘슈퍼 인재’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한 ‘인재 인수’였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슈퍼 인재는 바로 스케일AI의 창업자 알렉산더 왕 최고경영자(CEO). AI 핵심 인재로 알려진 왕 CEO는 어려서부터 수학과 프로그래밍에 탁월했다. 퀴라와 에드애파에서 초기 경력을 쌓다가 매사추세츠공대(MIT)에 입학했으나 곧 중퇴하고 19세에 스케일AI를 창업해 최연소 억만장자에 오른 AI 업계의 스타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AI 인재 영입을 위해 발로 뛴 것으로 알려졌다. 메타는 차세대 초지능 AI 모델 개발을 위해 슈퍼 인텔리전스 랩(MSL)을 구축하고 왕 CEO를 연구팀 리더로 임명했다.

메타에 질세라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구글의 AI 인재 20여명, 스타트업 인플렉션AI의 설립자와 다수의 핵심 인력을 한꺼번에 영입했다. 구글도 최근 AI 코드 생성 스타트업 윈드서프의 설립자와 핵심 연구진을 거금으로 영입했다. 중국계 빅테크 기업들도 실리콘밸리 AI 연구자들의 공략에 나섰다.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는 구글과 오픈AI의 핵심 연구원을 데려가는 등 ‘인재 빼가기’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금전적 유혹에 더해 ‘드림팀’이라는 심리 전술까지 동원하며 AI 인재를 포획한다. 경쟁사의 최고 인재를 직접 겨냥해 인터뷰 절차를 생략하고 즉시 채용을 제안하는 등 빼가기 전쟁도 치열하다.

미셔너리 vs. 머서너리

과거에도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처럼 과학기술계의 대중적 스타가 등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처럼 기업인 아닌 ‘개인 엔지니어’가 슈퍼스타로 부상해 시장가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글로벌 인재 전쟁의 한가운데 선 사례는 드물었다. AI 핵심 연구자 영입 경쟁은 이제 NBA 슈퍼스타나 할리우드 배우의 몸값에 비견될 정도로 치열하다. 실제로 상위 AI 인재에게는 연간 수백만 달러의 연봉과 수천만~수억 달러 규모의 스톡옵션 패키지까지 제안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인재 이동을 두고 사명감보다는 눈앞의 금전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용병 마인드’라고 비판하면서, 그간 미셔너리(Missionary·사명감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형성돼 온 실리콘밸리의 정신이 머서너리(Mercenary·금전적 이익만 좇는 용병)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가 AI 인재 전쟁에서 글로벌 빅테크처럼 천문학적인 자금력만으로 경쟁하는 것은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한국은 자금력만이 아닌 매력적인 그 무엇으로 인재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우리의 K-인재전략

첫째, 그랜드 챌린지와 글로벌 임팩 만들기. 최고의 인재들은 높은 연봉만큼이나 세상을 바꿀 흥미로운 문제에 대한 지적 갈망이 크다. 우리에게는 있는, 그러나 세상에 없는 유니크한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매력적인 ‘테스트베드’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실리콘밸리 기업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보적인 ‘K-챌린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컨대 제조 강국의 강점(세계적인 반도체, 자동차·로봇·조선 산업에 AI를 접목) 또는 세계에서 가장 특징적인 한국의 이슈(저출산·고령화)는 역으로 보면 돌봄 로봇 실험 등 그랜드 챌린지가 될 수 있다. 챌린지가 있어야 글로벌 임팩트도 크다.

둘째, 고정된 절대 금액을 제공하기 어렵다면 스톡옵션과 창업 기회를 통한 초고속 성장 트랙을 제시하는 방안이다. 도전과 창업을 꿈꾸는 인재들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 될 것이다. 고정된 급여보다 상당한 지분과 스톡옵션을 제공하고, 스핀오프 기회를 제공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모기업의 투자를 받아 독립 스타트업으로 분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는 거대 조직의 부품 또는 급여 돼지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10년 걸릴 성장을 3년 만에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창업의 가치는 지속되기 때문에 건강과 열정만 있으면 영원히 남는다.

셋째, 고정관념과 경직된 조직 문화, 그리고 시기 질투가 심한 곳에서는 인재가 머무를 수 없다. 그런 기존 문화와 단절된 곳에 문화적 치외법권 지대를 설정하고 ‘과학기술(Science) 및 인공지능 아일랜드(AI)=SAI’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연구 주제, 예산, 팀 구성 전반에 대한 자율성과 오너십이 보장되며 신기술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게 된다. 또한 AI 연구에 필수적인 데이터 접근성과 활용 장벽을 대폭 완화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프라를 제공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조성하면 좋을 것이다.

넷째, 글로벌 네트워크 및 국제 평판 제고 전략도 중요하다. 카이스트는 뉴욕 캠퍼스와 같은 국제적 거점을 마련해 글로벌 인지도 제고, 인재 확보 및 육성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해외 대학이나 연구소와의 국제 공동연구 및 국제학회 참가를 장려해 “이곳 출신은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는다”는 평판을 구축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산학협력으로 인재들에게 ‘듀얼 캐리어’(기업-대학 겸직 제도)를 제공하면 만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글로벌 인재 유치 전쟁은 기업이나 대학의 노력에 더해 한국을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들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샌드박스존에 이어 파격적인 세금과 비자 혜택(과학기술 핵심 인재에 대한 그린카드제 도입 포함), 소득세 감면, 교육 및 생활 여건(국제학교, 주거, 의료 등) 등 불편 없는 정주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글로벌 SAI 인재 전쟁에서 K-인재전략은 무엇일까. 있는 것으로 승부하라! 실리콘밸리 방식이나 머서너리를 추종하는 것은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우리만의 독특한 ‘K-인재전략’을 세우는 게 효과적이다. 우리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 속에서 가장 의미 있는 도전, 초고속 성장 트랙, 가장 큰 자율성, 가장 큰 미래 가치 등을 패키지로 준비해야 한다. 인재를 ‘고용’하는 관점을 넘어 그들의 초고속 성장을 실현시켜 줄 ‘꿈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현덕 KAIST-NYU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