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7) 아무런 준비 없이 간 일본… 성도들, 집과 차까지 준비

입력 2025-07-29 03:03
고정희(오른쪽 두 번째) 선교사 부부가 2011년 자녀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 고 선교사 제공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 1:33)

아무런 준비를 못 한 상황이었지만 설렘을 안고 일본 땅에 도착했다. 교회는 여러 의견으로 얽혔던 상황이 해결되던 중이었다. 성도들은 “참으로 신기하다”고 했다. 집이 없으면 텐트라도 치고 자면서 하나님이 풀어 가실 것을 기다리려고 했다. 그런데 성도들이 과부의 두 렙 돈 같은 물질을 모아 도배와 장판을 깨끗하게 한 목회자 가정이 머물 집을 준비해 놓았다.

교회에서 산 승합차가 주차장에 방치돼 있었는데 “운전할 목사님이 드디어 오셨다”며 도리어 좋아했다. 새 차까지 허락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고 왔을 뿐인데 주님이 앞서 일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아주셨다. 일본 땅에 도착한 첫날 밤 네 식구는 이 땅으로의 부르심에 한 번, 잘 도착했음에 한 번 더 감사했다. 주님이 먼저 와서 우리의 필요를 준비해 주심에도 감사 기도를 드렸다. 다다미 냄새를 처음 맡았다. “정말 일본 땅에 왔네”라며 놀라움에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일본 땅에서의 첫 발걸음은 도요타시였다. 원래 고로모시였는데 자동차 회사가 유명해지면서 지역 이름도 바뀌었다. 유명한 회사가 있어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살고 있었다. 대부분 브라질 페루 등 남미 사람이었다. 이들은 연립주택 단지에 집단을 이루며 살았다.

우리 가족이 살게 된 동네 이름이 ‘호미’였다. 일본이지만 일본 같지 않은 마을이었다. 아들이 학교에서 호미에 산다고 하면 “무섭지 않냐”고 물을 정도였다. 덩치 큰 외국인이 익숙지 않아 처음엔 겁나기도 했지만, 일본 속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곳은 우리 가족을 위해 하나님이 고르고 골라 허락하신 장소였다. 아들과 딸은 지금도 호미에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호미를 떠나면서 지금까지 같이 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 선교를 준비하고 땅을 밟은 것이 아니었기에 우리 식구는 일본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정도만 겨우 읽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하면 일본어를 배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다 보니 이들을 위한 공부방이 있었다. 도요타시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보란티아 센터’였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많았다. 성도들도 그런 센터가 있는지 몰랐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주님이 이미 준비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도 “한국인 학생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류붐을 타던 시기여서 한국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막 건너와 한국의 정체성으로 가득한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중학교 2학년인 딸을 많이 좋아해 주셨다. 무엇이든 익숙지 않은 그곳에서 아이들 마음에 숨 쉴 공간을 주셨다. 좋으신 하나님!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