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다가올 한·미 관세 협상에서 ‘대미 투자 규모’가 협상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만족할 만한 투자 수준을 먼저 제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분야별 협상 카드들을 조율해 나가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국민일보에 “미국의 관심은 쌀이나 쇠고기가 아니라 자국에 대한 투자 협조가 핵심”이라며 “미국이 우리나라에 일본과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요구하진 않을 것이므로 우리 현실에 맞는 적절한 투자 규모를 제시해 미국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분야를 미리 합의해주고 내주기로 했다는 얘기들은 사실이 아니다”며 “쌀과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개방 문제가 현재 협상의 레드라인인 사실은 변함없지만 다양한 카드들이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국에서 귀국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한·미 간 현안 협상이 막바지 꽤 중요한 국면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경제부처 각료들이 미국 워싱턴DC에서 분야별 세부 협상을 하고 있다”며 “이 국면에서 한·미 관계의 전반에 대한 총론적 협의가 필요했다”고 미국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 협상 기류가 ‘선 투자, 후 개방’으로 흐르면서 이재명 대통령도 연일 대기업 총수들과 만나 대미 투자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나 관세 인하를 위한 민관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부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을 차례로 만났다.
정부의 이 같은 전략은 미·일 협상 전략을 참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아주 협상을 잘했다. 쌀 등 농산물과 관련해 추가 피해가 거의 없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농업 시장 개방의 성과를 자랑할 수 있는 아전인수격 협상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쌀 수입을 물량 전체에는 변화를 주지 않고 총량에서 일부를 다양한 국가에 배정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 자국민 피해를 최소화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에 시장을 개방했다”는 성과를 내세우며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냈다.
안보 분야가 협상에서 제외된 것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자동차에서 수량에 제한 없이 관세 인하가 타결됐다는 선례가 생긴 점, 민감한 안보 내용이 이번 협상에 포함되지 않은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그동안 방위비 분담금 등 안보 문제까지 포괄하는 ‘홀 패키지 딜’을 타진해 왔으나 일본의 선례로 볼 때 안보 문제를 변수에서 제외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대신 대미 투자 규모가 당초 일본이 제안한 4000억 달러에서 최종 550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된 점을 감안하면 정부도 대규모 투자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윤예솔 최예슬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