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러키 돌핀 크루즈

입력 2025-07-26 00:38

큰마음 먹고 먼 섬나라 휴양지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바다와 수영, 먹는 것이 전부인 일정 가운데 무료 특전으로 제공된 프로그램 하나를 참여했다. 이름하여 ‘러키 돌핀 크루즈(Lucky Dolphine Cruise)’.

나무로 된 소박한 배 한 척에 가이드를 겸한 선원 세 명과 우리 가족, 각각 부부로 보이는 두 커플, 어린아이와 청소년을 동반한 두 가족까지 18명이 올라탔다. 배는 망망대해를 향해 출발했다. 돌고래가 나온다는 지점까지 왕복하는 데 예정된 시간은 2시간여. 가이드는 우리에게 바다 위로 돌고래가 뛰어오르는지 잘 보라면서 “디스 이즈 러키 돌핀 크루즈(This is lucky dolphine cruise)”라고 강조했다.

운이 좋아야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뜻인지, 돌고래를 잘 볼 수 있어서 ‘러키한 배’라는 의미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우리를 포함한 승객들의 표정은 대체로 들떠 있었다. “돌고래를 보는 확률이 90%가 넘는다”는 설명 덕분인지 모두들 배 밖 바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제일 먼저 발견하고 이 배의 영웅이 되고 싶다’는 욕구와 ‘왠지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자신감 사이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바다 수평선 멀리 아기자기한 섬 풍경 같은 것도 없는, 그저 시퍼런 바다가 끝없이 이어져도 그다지 지루한 줄 몰랐다. 커플끼리 가족끼리 이야기도 끊이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 시간이 넘어가자 배 안 공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신 셀카를 찍으며 신나하던 커플도, 시끌벅적 깔깔대던 가족도 확연히 말수가 줄었고 지친 표정이었다.

배 바깥을 향해 앉아 있던 이들도 하나둘 안쪽으로 돌아앉았다. 우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절반 남짓의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그보단 절반 이상의 시간이 이미 흘렀다는 생각이 앞섰다. 불안감은 기대감을 쉽게 눌렀다. ‘이대로 진짜 못 보고 돌아가나.’ 이런 휴가지에서, 공짜로 배를 타고, 이런 풍경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했던 마음은 손쉽게 원망으로 변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나 간사했다. 불안이 한번 들어서니, 평화롭고 아름답게 보이던 바다조차 불현듯 무섭게 다가왔다. 넓디넓은 바다 위에 우리가 탄 작은 배 외에 작은 섬 하나, 다른 배 한 척 없다는 사실이 새삼 위험하게 느껴졌다. 돌고래가 뭐라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너무 멀리 나온 건 아닐까.

평안을 찾은 건 선장이 뱃머리를 돌린 뒤였다. 돌고래를 못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공식화되자 차라리 여유가 생겼다. 언제 나올지 모를 돌고래를 찍겠다고 대기하는 대신 배 지붕 위로 올라가 앉았다. 한 프랑스인 커플이 진즉 올라와 쉬고 있었다. “오늘 날씨 진짜 좋네요. 어제처럼 비도 안 오고 적당히 흐려서 안 뜨겁고. 안 그래요?” 진짜 그랬다. 전날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돌고래를 만나든 안 만나든 이미 러키했다.

편안하게 남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는 게 다 이 크루즈 같다고. 태어난 순간, 무작정 시작된 삶의 항해. 목적지를 모른 채 나아가느라 불안하기도 하고, 분명한 목적지가 있어 도착했더라도 원하던 것과 달라 실망하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이뤘다 생각한 순간에도 삶은 멈추지 않고 또 나아간다. 겨우 얻어낸 행복과 만족감조차 영원히 간직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그래서 언제든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성경 전도서를 풀어낸 ‘지혜의 언어들’을 낸 김기석 목사는 국민일보에서 열린 북콘서트 ‘국민일독’에서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붙잡을 수 없는 삶의 부분이 있다”며 진짜 잘 사는 법을 역설했다.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내 의지대로 잡으려 하는 대신 “우리에게 지금 다가오는 것을 한껏 누리라”는 것. 크고 작게 주어지는 순간을 선물로 누릴 수 있다면 돌고래가 있든 없든, 그 항해는 이미 ‘러키 크루즈’일 것이다.

조민영 미션탐사부장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