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미 ‘2+2 통상’ 협의가 무산됐다.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와 상호관세 협상을 벌일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에서 24일 “긴급한 일정”을 이유로 취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시한(8월 1일)이 일주일 남은 상황에서 성패를 판가름할 고위급 협상이 무산된 것은 우리로선 뼈아프다.
미국은 협의 하루 전날 우리 측에 이메일로 취소를 통보했고 이유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명백한 외교적 결례다. 하지만 미국을 탓하기 전에 현 정부 들어 양국 고위급 만남이 자주 삐걱대고 있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20일 방미한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만나지 못하고 유선으로만 협의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달 초 방한하려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한 닷새 전에 취소했다. 베선트 장관은 지난 18일 일본을 찾았으면서도 바로 옆 한국은 패싱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한·미 관계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가졌고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8차례 방미해 협상했다. 결국 일본은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자동차 품목관세도 절반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한 협상을 벌인 끝에 30%에서 15% 수준으로 관세를 내리는 합의에 거의 도달했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반면 한·미는 정상회담도 없었고 고위급 회담은 수시로 무산됐다. 상대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즉흥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트럼프 성향을 고려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막바지에 떠밀리듯 합의 도장을 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시간이 없는 만큼 치밀한 전략을 세워 선택과 집중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트럼프가 원하는 농산물 시장 개방과 대미 투자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일본, 인도네시아, 영국 등 대부분 국가가 농산물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국익과 현실 앞에서 쌀, 소고기 양보 불가만이 정답인지 냉정히 따져 볼 때다. 내줄 것은 내주되 피해 분야에 대한 보상과 지원을 두텁게 하는 게 경쟁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정부는 1000억 달러(137조원) 이상의 현지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일본(5500억 달러)과의 격차를 논하기에 앞서 트럼프를 띄워주는 이런 제스처는 필요하다. 투자의 세부 내용과 일정은 지혜롭게 조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