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엔 법전 한 손엔 성경… 이웃 눈물 닦는 국선 변호·목회는 통하죠”

입력 2025-07-25 03:00
고재국 이문동교회 부목사가 최근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카페에서 목회자와 국선 변호사로 동시에 일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변호사님, 저 같은 못난 사람도 편견 없이 잘 변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고재국(45) 이문동교회 부목사가 지난 6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의뢰자가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코로나 시기 직장을 잃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다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거책으로 이용당한 20대 청년의 이러한 감사 인사는 강단에서 복음을, 법정에선 공의를 전하는 그에게 사역의 방향성을 다시금 선명하게 보여줬다.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카페에서 최근 만난 고 목사는 “자기편이 필요한 강도 만난 이웃의 곁을 지키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목사였다. 그러나 같은 길을 걷던 아버지의 어려움을 가까이서 봤던 그는 경제적 자립을 이루며 목회하고 싶었다. 신학을 하기 전 먼저 건국대 법학과에 들어갔다. 1999년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목표한 대학이 아니란 아쉬움으로 방황했다. 고 목사는 “군 제대 후 마음을 다잡고 사법시험에 도전해 1차에 합격했지만 2차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며 “이후 또다시 1차에서 한 문제 차이로 탈락하자 ‘이 길은 내 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취업하기로 했다”고 했다.

20대 내내 사법시험만 준비했던 그는 구직에도 계속 실패했다. 마음을 추스르려 찾은 하숙집 앞 작은 교회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은 그는 잊고 지냈던 목회자의 꿈을 다시 떠올렸다. 그렇게 신대원에 진학했다. 신학대 2학년 2학기 고 목사는 다시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역교회의 현실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보였다. 고 목사는 “‘자비량 목회’만이 가능한 길이라고 생각한 저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도전과 부르심으로 이끄셨다”고 했다. 그는 장로회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한 후 전북대 로스쿨을 거쳐 2019년 4월 변호사가 됐다. 학부 시절 법학을 전공했던 것도 도움이 됐다. 고 목사는 “그 자격을 목회의 도구로 사용하라는 분명한 부르심이었다. 너무나 분명한 소명이었기에 로스쿨 입시부터 변호사시험까지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제8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경기 의정부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수백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잠시 흔들리기도 했다. 교회 사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넉넉해지면서 ‘이 길이면 여유롭게 살 수 있겠다’ 싶던 때, 첫째 아이가 혈액암의 일종인 버킷림프종 판정을 받았다. 고 목사는 “소아암 병동에서 우리보다 더 연약한 가정을 섬기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물질에 대한 훈련과 변호사로서의 방향을 가르쳐 주셨다”고 고백했다. 아이는 2021년 8차례 항암 치료를 마쳤고 내년 1월 완치를 앞두고 있다.

그는 로펌을 그만두고 2023년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환난당한 이웃의 편에 서고자 ‘서린(西隣)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지난해부터 서울 동대문구의 이문동교회에서 부목사로 교구 사역도 시작했다. 담임목사와 성도의 배려로 인천지방검찰청의 피해자 국선변호사, 인천남부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가정학대 피해 아동, 성폭력 피해 여성, 학교 폭력으로 상처 입은 학생 등을 현장에서 마주할 때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오늘 만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려고 저를 이 자리에 보내셨다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

이중직을 감당하는 교역자를 바라보는 성도들의 반응은 어떨까. 고 목사는 “성도들이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며 “세상과 맞닿은 설교에 공감하고 때때로 법률 자문도 한다”고 했다. 김영만 이문동교회 담임목사는 “고 목사가 변호사 자격을 갖췄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았기에 청빙했다”면서도 “목회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자격이 아니라 목회라는 소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의 삶”이라고 강조했다.

고 목사는 앞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며 사역하고 싶다고 했다. 목회상담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가정을 지키는 지역 법률 사역자로 활동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중직을 고민하는 후배 목회자들에겐 이런 조언을 남겼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교회라는 틀 안에만 가두지 마세요. 세상 속에서도 주님의 정의를 실현하면 참 좋겠습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