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엡스타인 파일

입력 2025-07-25 00:40

미국의 억만장자 금융인 제프리 엡스타인의 가장 큰 경쟁력은 인맥이었다. 사립학교 교사로 일하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의 회장 자녀 과외를 한 인연으로 베어스턴스에 입사한 엡스타인은 부유층 고객 자산 관리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억만장자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회사를 설립해 부를 축적했고, 각계각층 엘리트들과의 인맥도 구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유력 정치인, 영국의 앤드루 왕자, 다수의 영화배우와 기업인 등과 밀접한 관계가 됐다. 그는 이들을 뉴욕의 호화 자택, 플로리다의 대저택, 미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섬 등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었는데 문제는 엡스타인이 같은 장소에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 네트워크를 운영했다는 점이다.

한 부모의 신고 후 수사를 통해 수십명의 피해자가 확인됐고 엡스타인은 2008년 플로리다주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형기 대부분을 교도소 밖으로 출퇴근하며 복역하는 특혜를 누렸다. 2019년 연방 검찰에 다시 체포된 그는 감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공식 사인은 자살로 발표됐지만 유력 인사들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 맞물려 타살이라는 의혹이 확산됐다.

‘엡스타인 파일’은 그의 수사과정에서 수집된 법원 문서와 연락처 목록, 영상, 증언록 등을 통칭하는 것이다. 지난 2월 팸 본디 법무장관은 ‘고객 명단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으나 법무부는 최근 “공개할 만한 추가 문서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엡스타인 파일에 트럼프의 이름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은 부인했지만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약으로 ‘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내걸었는데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를 향해 왜 공약을 지키지 않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엡스타인 파일이 2기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큰 암초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