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지갑에 현금 15만원을 꽂아 준다면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3만원이 넘는 수박 한 통을 큰맘 먹고 사거나, 비싸서 엄두를 못 냈던 1만5000원짜리 평양냉면을 먹을 수도 있다. 자녀의 방학 특강을 위한 학원비 일부로도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경기에 꼭 써야 하는 곳 외에는 허리띠를 졸라매던 대부분 소시민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경기 부양 효과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코로나19 당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파급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 5월 전 국민에게 지급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의 소비 증대 효과가 30%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소득 수준에 따라 지원금을 소비에 쓰는 정도도 달라졌다. 저소득층은 지원금을 곧바로 지출해 소비 진작 효과가 있었지만, 저소득층이 아닌 경우 소비를 그만큼 늘리지 않았다. 추가 소득 중 저축되지 않고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인 한계소비성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일수록 한계소비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은 여러 번의 재난지원금 지급으로도 증명됐다.
코로나19를 지나며 경기 부양을 위한 지원금은 선별 지원이 효과적이라는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된 것으로 보였다. 정부도 선별 지원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원금 대상을 선별하기 위한 행정력 낭비 등의 걱정도 더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러던 논의가 올해 민생회복 소비쿠폰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부는 “이번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업은 소비 진작과 소득 지원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쿠폰이 실제 소비를 늘리는 데 역할을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당시를 생각해보면 소비 진작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은행은 ‘거시계량모형(BOK20) 구축 결과’ 보고서에서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정부 소비는 다른 방법보다 국내총생산(GDP)에 기여하는 정도가 낮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1조원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의 이전 지출은 GDP를 3300억원 늘리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가 복지나 교육 서비스 등에 직접 재정을 쓰면 GDP가 9100억원 늘었고, 투자하는 방식으로의 지출로는 8600억원 늘었다. 재정 지출의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지원금 지급은 정부 소비나 투자보다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위한 13조9000억원의 재정 투입이 GDP에 얼마나 기여할지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물론 당장의 재정 적자를 걱정하는 것보다 주머니에 꽂히는 15만원이 반가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 국민 대상 지원금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이미 여러 경제학자가 전 국민 지원금의 효용이 크지 않다고 지적해 왔다. 잠깐의 반가움을 14조원과 맞바꾸기에는 치러야 할 책임과 대가가 너무 크다.
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또는 선별적으로 주느냐에 대한 정치적 수싸움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경제 위기 상황에 지급하는 지원금은 꼭 필요한 계층에만 주기로 뜻을 모았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15만원을 주는 것과 경제적으로 위급한 계층에 50만원을 주는 것을 비교하면 파급 효과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15만원이 제대로 쓰일 수 있게 만드는 섬세한 정책 설계도 필요하다. 사용처를 지역별, 업종별로 제한하기보다 소상공인을 위한 소비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의 빈틈은 정책 실패로 돌아온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소비쿠폰 판매 글이 올라온 것은 정책의 빈틈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이왕 경기 부양을 위해 쓰는 돈이라면, 필요한 사람이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책을 폈으면 한다.
심희정 산업1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