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140년 전 여러분은 한국의 운명을 바꾸셨습니다. 윌리엄과 메리 스크랜턴이라는 두 사람을 한국 땅에 선교사로 파송했을 때 단지 두 사람만 보낸 게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은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희망의 씨앗, 치유의 씨앗, 그리고 하늘나라의 씨앗을요. 본문은 바로 그 하늘나라가 어디서 시작되는가에 대한 놀라운 진술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자기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18:23)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경제적 비유가 아니라 죄와 은혜의 회계를 말합니다.
한 종이 왕 앞에 끌려옵니다. 그의 빚은 무려 만 달란트. 당시 노동자 20년 치 임금입니다. 종은 애원합니다.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빚을 탕감합니다. 여기서 복음의 정수를 보게 됩니다. 용서는 자격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왕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용서란 완전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용서를 받은 종은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은혜는 논리를 깨뜨리고 정의를 방해하기 때문에 불편합니다. 그래서 종은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자신에게 100데나리온(약 2000만원)을 빚진 동료를 가차 없이 감옥에 가둡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그를 다시 불러 감옥에 가둡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방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받을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받아들여 질 때만 능력이 됩니다. 진짜 용서는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는 하늘의 왕에게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왕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와 결산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와 물을 쏟으셨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깨닫습니다. “우리는 갚을 수 없는 자이며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을.” 은혜가 우리 마음에 떨어질 때 그 순간이 바로 천국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은혜는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서곡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의 은혜 받은 삶 때문입니다. 윌리엄 스크랜턴은 병을 앓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은혜를 나눠야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렇게 그는 한국에 와서 병든 자들을 돌보는 진료소를 엽니다. 그 진료소가 바로 상동교회입니다.
그곳에 돌을 던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전덕기.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가난한 숯장수였습니다. 하지만 스크랜턴 부부는 그를 품었습니다. 그 사랑이 아이를 바꿨습니다. 그는 자라 상동교회의 목사가 돼 하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윌리엄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은 여성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이화학당, 오늘의 이화여자대학교. 수많은 여성 지도자들이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한 번의 용서가 한 교회를 살렸고 그 교회가 도시를 살렸고, 그 도시가 민족을 흔들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것은 우리가 선하거나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 용서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도 용서의 사람이 됩니다. 그 은혜가 지금도 우리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성조 목사(서울 상동교회)
◇이 설교는 이성조 목사가 스크랜턴 파송 140주년을 맞아 방문한 미국연합감리교회(UMC) 오하이오연회 세이비어교회에서 회중들에게 한 내용입니다. 상동교회는 윌리엄 B 스크랜턴 선교사에 의해 설립돼 일제강점기 민족 교회로서 역할을 했으며 웨슬리 정신에 따라 그 역사를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