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민(55) 장충단교회 목사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처음 담임 목회를 했던 장소는 전남 신안 추포도에 있는 추포교회였다. 신안에서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교회를 개척했던 아버지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외항선 기관사였던 아버지는 뒤늦게 소명을 받고 목회자가 됐다. 장 목사는 어린 시절 낙도 목회자 가족에게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가난이 싫어 오래 방황했고 일부러 불교 학교인 동국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생 때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1993년 서울신대 신대원에 입학했다.
최근 서울 중구 교회에서 만난 그는 “낙도 사역을 하셨던 아버지의 제안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느껴졌다”며 “추포교회에 부임해서 그 성도들이 예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며 교회가 한 영혼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추포교회 성도들은 교회 종소리를 듣고 하루를 시작한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논밭이나 바다로 나가 일한다. 주일예배와 수요 저녁 예배 참석 숫자가 비슷할 정도로 예배가 생활화됐다. 봄이 되면 목회자를 초청해 ‘씨 뿌리는 예배’를 드리고 한 해 농사를 준비했다. 장 목사는 “가뭄이 들어도 ‘씨 뿌리는 예배’를 드린 우리 성도는 평년보다 두 배를 수확하는 등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경험했다”고 밝혔다.
어느 날 유독 교회를 싫어했던 마을 이장의 아내가 귀신이 들려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온 산을 뛰어다니던 아내를 겨우 찾아온 이장은 최후의 수단으로 장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배당에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적이 없었어요. 하나님께 귀신 못 쫓아내면 여기서 더 이상 사역 못 하니까 책임지시라고 떼를 썼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던 이장님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방에서 만난 이장님 아내가 제 눈을 피하는 것을 보고 자신감이 생겼어요.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지금 시대에도 사도행전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예수님 이름에 권능이 있고 그분이 묶인 것을 자유롭게 하신다는 것을 제가 추포도에 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겁니다.”
장 목사가 99년 장충단교회 부목사로 청빙 돼 추포도를 떠나던 날, 그와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밀레도 항구에서 장로들과 눈물로 헤어진 것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2003년까지 장충단교회 청년부를 맡아 당시 30여명이었던 인원을 150명 넘게 부흥시켰다. 그가 꿈꾸는 교회의 모습은 오아시스와 같은 교회였다. 나그네처럼 힘들게 인생의 사막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물을 주는 교회가 되길 바랐다. 그는 “나그네를 반겨 치료하고 길을 안내해서 다시 사막으로 떠나보내는 역할을 교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오아시스 이론을 더 깊게 정립한 때는 미국 유학 시절이었다. 미국 버지니아 리버티신학교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면서 윌로우크릭교회와 새들백교회를 탐방하고 부흥의 비결을 연구했다. 워싱턴 펠로십교회에서 사역하며 교파를 초월한 다양한 경험을 쌓고 2010년 전남 목포 낙원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낙원교회에서 13년간 행복하게 사역하던 중에 그가 부목사로 사역했던 장충단교회에서 청빙 연락이 왔다. 낙원교회가 장충단교회보다 규모도 크고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장 목사는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쓰임 받고 싶어 2023년 장충단교회로 돌아왔다.
20여년 만에 돌아온 장충단교회 여건은 많이 변해있었다. 올해 80주년을 맞은 장충단교회는 교세가 감소했고 예배당도 많이 노후됐다. 도심교회라 주일 하루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성도들은 예배 후 교제도 없이 흩어졌다.
장 목사가 성도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처음 시도한 것은 ‘찾아오는 성찬식’이었다. 그동안 부활주일에 했던 성찬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 고난주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2차례, 총 18번의 성찬식을 진행했다. 그는 “성찬식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교제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라며 “성찬식을 통해 성도들끼리는 물론 목회자인 나와 성도들 사이도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성탄절에는 구세군과 협력해 성도들이 돌아가며 자선냄비 종을 울리면서 지역에 성탄 문화를 전했다. 4부까지 진행되는 주일예배는 각각 조용한 예배, 클래식 예배, 캐주얼 예배, 청년 예배 등으로 특성화했다.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5주가 있는 달에 성도들이 주일에 교회로 모이지 않고 지역 목장(구역)별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64개 목장이 자체적으로 다양한 예배를 기획한다. 전도 대상자를 초청하는 목장도 있고 장기 결석자를 찾아가는 목장, 아픈 환자를 섬기는 목장, 엠티를 가는 목장도 있다. 장 목사는 아침 일찍 설교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성도들이 활용하게 한다. 이것이 그의 목표인 ‘성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예배자가 되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에 좋지 않은 시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교회가 지역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는 짐이 아니라 즐겁게 누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면 곳곳에 오아시스 같은 공동체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