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의 늙은 고양이에게

입력 2025-07-25 00:33 수정 2025-07-25 00:33

스무 살, 인간 나이로 100살이 된 나의 고양이, 이응을 바라본다. 지금은 하루 대부분을 자는 노묘지만, 내가 침대에 누우면 발치에서 ‘미야오’ 하고 나를 부른다. 내가 이리 오라는 뜻으로 침대를 두어 번 두드리면, 이응이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로 올라온다. 그러고는 마치 작은 상자 안에 몸을 구겨 넣듯, 내 팔의 곡률에 몸을 꼭 맞춘다. 어쩌면 내 팔은 이응이에게 가장 완벽한 ‘묘체공학적 침대’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여름 저녁이었다. 퇴근하고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의 출처는 좌식 의자 위였다. 거기에 종이 한 장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들춰보니 조심스레 놓인 응가 한 덩이. 화장실 문이 바람에 닫혔던 것이었다. 이응이는 닫힌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을 것이다. 그러다 내 의자에 정중하게 볼일을 보았다. 그것을 덮은 종이 속에는 작지만, 확실한 예의가 있었다.

폭설이 내린 날이면 이응이는 옥상에서 놀다 돌아왔다. 두 발로 서서 앞발로 문턱을 짚고, 방충망을 살살 밀었다. 코가 빨개지도록 뛰어놀다가 돌아올 때면, 방충망에 발톱이 걸려 그대로 매달렸다. 숭숭 뚫린 방충망 구멍들은 계절마다 늘어났다. 그 구멍들이 마치 우리가 함께 지내온 시간의 흔적 같았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어쩌면 고양이는 신일지도 모른다고. 완전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충만한 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을 상상한 인간과 달리 고양이는 눈빛 하나로 신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에게도 다른 생명을 순수하고 지극하게 사랑할 힘이 있음을 증명한다.

이제 이응이는 근육이 빠져 걸을 때 비틀거리다 주저앉기도 한다. 이응이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가 오면 이응이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댈 것이다. 그리고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골골송을 불러줄 것이다. 너의 수발을 들게 되어 고마웠다고, 정말 깊이 사랑한다고.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