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위기’ 트럼프, 난데없는 오바마 때리기

입력 2025-07-23 19: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공화당 의원들과 접견한 자리에 한 참석자가 쓴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다듬고 있다. EPA연합뉴스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연루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난하며 시선 돌리기에 나섰다. 2016년 대선 당시 자신과 러시아의 밀착 의혹을 퍼뜨린 주동자로 오바마 전 대통령을 지목하며 쿠데타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중 엡스타인 관련 질문을 받고 “일종의 마녀사냥”이라며 “당신들이 진짜로 조사해야 할 것은 오바마”라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가 쿠데타를 주도했다”며 2016년 대선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도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다. 앞서 지난 18일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DNI)이 공개한 문건에는 2016년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이 조작했다는 주장이 담겼다. 트럼프는 지난 21일 트루스소셜에 오바마가 연방 요원들에게 체포되는 가상의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의 이날 발언에 오바마 측은 즉각 반발했다. 오바마 대변인인 패트릭 로덴부시는 이날 “백악관에서 쏟아져나오는 허위 주장과 억측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지만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장은 예외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적을 향한 ‘보복 캠페인’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미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집권 1기 당시 연방 상원의 초당적 위원회와 미국 중앙정보국(CI A)은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가 미국 유권자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대규모 공작을 벌였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2019년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트럼프 본인이나 캠프가 러시아와 공모하진 않았다고 판단했다. 트럼프가 오바마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자신의 엡스타인 연루 의혹과 관련해 시선을 돌리는 시도로 평가된다. 트럼프는 과거 엡스타인에게 외설적인 그림을 그린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에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소송을 걸고 소속 기자를 해외순방 동행 취재단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날 엡스타인 문건 공개 논란이 미 하원 전체를 마비시킨다며 이번 주 회기를 조기 종료하고 9월까지 모든 입법 활동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존슨 하원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은 이 사안을 정치적 게임으로 삼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의 광대극에 더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