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산불의 나비효과

입력 2025-07-24 00:38

최근 폭우로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남 산청은 지난봄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형 산불의 아픔을 겪은 곳이다.

산청은 지난 3월 산불로 지반이 약해졌고, 그 여파가 이번 집중호우로 연결돼 산사태 등으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기후위기의 영향을 제대로 받은 것이다. 산불의 나비효과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지난 영남 산불로 인해 이 지역이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예견됐었다. 실제 2개월 전 산림청이 발표한 ‘2025년 산사태 방지 대책’에 따르면 대형 산불 후 복구 필요 대상지가 615곳이었고, 2차 피해 우려가 상대적으로 높은 곳은 279곳이나 됐다. 산림청이 산불 피해 지역의 산사태 위험지도 등급 변화를 분석한 결과 경북 산불 피해지의 1~2등급 비율은 산불 발생 전 26.96%에서 산불 발생 후 39.65%로 약 13% 포인트나 급증했다.

산불이 나면 그 지역은 산사태 위험성이 높아지게 된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발간한 ‘2025 산사태 제대로 알기’ 책자에 따르면 산불 피해 지역에서는 지표면을 덮고 있는 나무, 풀, 낙엽 등 피복물이 사라진다. 이에 나무의 우산효과와 뿌리의 말뚝·그물효과 기능이 감소하게 돼 지표면 침식과 토사 유출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산불 피해지역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다양한 복구사업이 실시된다. 이 중 응급복구는 봄철 산불 피해지역 중 그해 우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실시하는데, 주로 산지 비탈면에는 수로, 편책 등을 설치한다. 계곡부에는 골막이, 사방댐 등의 구조물을 설치해 토사 유출 및 산사태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한다. 보다 큰 면적에는 나무, 풀 등의 식생복구가 포함된 항구복원이 이뤄지게 된다. 2000년도 동해안 산불 피해지에서 식생복원 및 사방공법이 적용된 곳과 적용되지 않은 곳을 비교한 결과, 산불 발생 이후 5년까지는 연도별 토사 유출량이 최대 10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이렇듯 산불이 발생한 지역은 여름철 폭우로 인한 산사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폭우에서 산청 지역은 이 같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산청군이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한 곳은 단성면 반목리 단 1곳뿐이었다. 산사태 취약지역 지정부터 허점을 드러낸 행정 당국은 재난문자 발송과 대피명령에도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사상 초유의 ‘전 군민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이때는 이미 동시다발 산사태로 다수의 인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한 뒤였다.

물론 호우 예보가 났을 때 미리 주민들을 대피시키지도 못했다. 이 같은 준비 부족은 지난 3월 똑같이 초대형 산불 피해가 발생했던 경북 지역에서 이번 물난리에 인명 피해가 없었던 것과 대비된다.

이번 폭우 때 경북 지역에선 22개 시·군(3445개 마을)에서 마을순찰대 5696명(대원 4167명·공무원 1529명)이 전면 가동돼 피해 예방에 큰 역할을 했다. 폭우 예보가 있던 지난 16일부터 마을을 돌며 취약계층 주민들의 안전을 확인한 이들은 17일부터 19일까지 본격적으로 취약지역 주민들을 사전 대피시켜 인명피해를 막았다. 10개 시·군에서 395가구 547명이 대피했다. 대피 이후에도 영주·문경·예천·봉화 등 산사태 경험이 있는 16개 마을에서는 지속적인 안전 확인과 상황 관리가 이뤄졌다.

불과 반년도 안 돼 산청에는 화마와 수해라는 두 가지 큰 자연재해가 찾아왔다. 이제 늦여름과 가을엔 태풍이 찾아오고, 겨울엔 폭설이 내린다. 좀 더 치밀한 대책을 세워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한다.

모규엽 사회2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