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저작권, 보호인가 장사인가

입력 2025-07-24 00:36 수정 2025-07-24 00:36

유영국 100만원, 장욱진 100만원, 박수근 66만원, 김환기 30만원, 천경자 7만5000원, 박노수 1만원….

이 금액은 미술책을 내기 위해 책 내지에 작품 사진을 전면으로 수록할 경우 저자나 출판사가 1점당 유족 측에 내야 할 저작물 사용료다. 모두가 ‘이건희 홍라희 컬렉션’에 포함될 정도로 한국 근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작고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가지 생각이 얼른 들 거다. 작품 이미지 사용료가 왜 이렇게 들쭉날쭉하지? 그리고 작품 사진 하나에 30만원, 66만원(1쇄 2500부 이하인 경우), 100만원이면 너무 비싼 거 아니야? 게다가 박수근 작품의 경우 한 번 지불로 끝나는 다른 작가와는 달리 증쇄할 때마다 또 내야 한다.

사실 이 금액은 우리 출판 현실에 비춰 과도하게 비싸다. 예를 들어 언급된 6명의 작품을 2점씩 총 12점을 책에 싣는다고 치자(통상은 수십 점 이상 들어가지만). 유영국 200만원, 장욱진 200만원, 박수근 132만원, 김환기 60만원, 천경자 15만원, 박노수 2만원 등 총 609만원이 도판 사용료로 지불돼야 한다. 책 가격이 2만원이고, 초판 1000부(출판 시장이 좋지 않아 2000부 찍는 경우가 드물다)를 찍어 다 팔려도 저자가 받는 인세(책 가격의 10%)는 200만원이다. 남들 물놀이 갈 때 놀러 가지도 못하고 책을 쓴 저자의 인세가 저작권자인 유족이 받는 작품 이미지 사용료만도 못한가.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물의 무단 복제 및 사용을 막아 창작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 ‘창작자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지속적인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 문화 및 지식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품 이미지 사용료에 놀라 “다시는 그 작가에 대한 책을 쓰지 않겠다”는 지인도 있다. 저술 의욕마저 꺾는 고가의 도판 사용료라면 이건 저작권 보호를 넘어 ‘저작권 장사’ ‘세금 안 내는 저작권 상속’이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그나마 천경자, 박노수의 작품 이미지 사용료가 낮은 이유는 저작권을 유족이 아닌 서울시와 종로구 등 지방자치단체가 위탁 관리하고 있어서다.

출판가에서는 고흐, 모네 등 서양 근대 작가 미술책만 계속 낸다. 이들이 더 유명해서이기도 하지만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나 저작권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사정을 몰랐을 때는 한국 작가를 외면한다고 출판사 탓만 했다. 이제는 출판사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출판인 J씨는 “한국 작가가 서양 작가에 비해 대중적 지명도가 낮은 이유가 있긴 하다”면서 “우리도 왜 한국 작가를 더 알리고 싶지 않겠냐. 하지만 제작비에서 도판 사용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 그만큼 책값이 높게 책정되고 (독자는 부담을 느껴) 판매는 어려워진다”고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털어놨다.

결국 부메랑이 되지 않을까. 유영국, 장욱진,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한국의 근대 미술을 수놓은 이들 작가들은 ‘K컬처’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지금, 한국 대중에게도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대중에게 알려지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출판이나 영상 제작이다. 대중에게 소비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잊힌다. 과도할 뿐 아니라 들쭉날쭉한 사용료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관리 주체도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책이나 영상 제작에 쓰기 위해 일일이 저작권자를 수소문하는 고생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저작권 신탁관리를 허가한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KOLAA)에 이미지 저작권 관리를 신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저작권 보호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사용료는 창작 생태계와 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