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는 슬프지도 엄숙하지도 않아요… 그저 힘껏 굴릴뿐”

입력 2025-07-25 00:03 수정 2025-07-25 00:03
매일 25억명 넘는 사람이 찾는 유튜브엔 매일 수많은 채널이 만들어집니다.
많은 한국인은 오늘도 유튜브에 접속해 정보를 얻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보고 위안을 받습니다. '유튜버'와 '인터뷰'의 첫 자음을 딴 'ㅇㅌㅂ'은 이렇듯 많은 이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유튜버 ‘굴러라 구르님’으로 활동 중인 김지우씨가 지난 15일 서울청년센터 성북에서 최근 출간한 책 ‘의심 없는 마음’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휠체어에 그려진 인기 캐릭터 쿠로미는 ‘휠꾸’(휠체어 꾸미기)를 좋아하는 김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최현규 기자

“내 간지나는(‘멋있다’는 뜻의 속어) 휠체어 잘 봤어? 난 저 휠체어와 함께 굴러다니는 구르님이라고 해.”

2017년 2월, 앳된 얼굴과 명랑한 목소리의 고등학생이 유튜브에 첫 영상을 올렸다. 자신을 뇌성마비 장애인이라 소개한 그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8년이 지나 고등학생 소녀는 구독자 10만명에 육박하는 어엿한 1세대 장애 여성 크리에이터가 됐다. ‘장애 있는 언니들이 알려주는 생리 이야기’ ‘미국 학교 유일한 한국인 장애인 여학생, 나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 그의 유튜브에는 흔하듯 흔하지 않은 영상이 즐비하다.

김씨가 태어난 2001년,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해 딸의 매 순간을 기록한 아버지 덕분일까. 김씨는 카메라에 찍히는 게 익숙했고 자신의 모습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이 당연했다. 영상이 익숙했던 김씨는 유튜브가 유행이라는 말에 카메라를 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굴러다니니 활동명은 ‘굴러라 구르님’으로 정했다. “유튜브 시작에 대의(大儀)는 없었다”고 말하는 김지우(24)씨를 서울청년센터 성북에서 만났다.

‘휠꾸’하며 기부하는 유튜버

김씨는 ‘간지나는’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휠체어 양옆에는 직접 그린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다. 손잡이에는 헤드폰이 걸려 있었고 수납함에는 휴대용 카메라가 담겨 있었다.

김씨는 수동 휠체어에 전동 모터가 달려 나왔던 18살 무렵의 기억이 선명하다고 했다. “작은 모터가 휠체어에 달리는 순간 모든 게 바뀌었어요. 저는 그때 걸음마를 뗐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걸 폭발시키듯이 한 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이 됐죠.”

전동 휠체어의 등장은 김씨의 삶을 통째로 바꿔놨다. 홀로 지구 반대편에 갈 수 있었던 것도 전동 휠체어 덕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달 말 출간한 책 ‘의심 없는 마음’에도 수동 휠체어에 실려 다니다가 스스로 전동 휠체어를 몰며 경험한 세상이 담겨 있다. “장애 학생 부모님 중에는 휠체어 타는 걸 거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물론 걷는 재활도 중요하죠. 하지만 보호자의 손을 잡고 걷는다면 그 손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전동 휠체어를 타면 혼자 지구 반대편까지 갈 수 있어요.”

영상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3년 전. 크리에이터로서 ‘나만 할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다. 이때도 그의 눈에 휠체어가 들어왔다.

“저한테 휠체어는 어릴 때부터 재밌는 물건이었어요. 휠체어를 한번 타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았죠.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본 선생님들은 늘 혼을 내셨어요. ‘이건 장난감이 아니야!’라고요. 오히려 그게 이상했어요. 너무 엄숙하게만 대하는 것도 편견 같았어요. 그래서 가장 엄숙하게 여겨졌던 휠체어로 가장 재미있는 걸 해보자고 결심했죠.”

2021년 ‘이달의 휠체어’ 10월 프로젝트로 기획한 ‘그래피티 힙합 오토바이 휠체어’. 포토그래퍼 장모리

이후 1년 동안 ‘이달의 휠체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선 시대에 휠체어가 있었다면?’ ‘왜 휠체어 탄 청소년 여주(여주인공)는 없을까?’ ‘휠체어 타고 물놀이하기’ 등 다양한 소재가 이 프로젝트를 빼곡히 채웠다.

마지막 편은 장애 아동들과 함께하는 ‘휠꾸’(휠체어 꾸미기) 워크숍으로 마무리됐다. 3개월간 6명의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휠체어를 만들고 꾸미는 시간을 보냈다. 그 경험은 김씨에게도 특별했다. “그 시절 장애 학생들의 마음이 어떤지 아니까 그 아이들에게도 휠체어가 조금은 덜 낯설고 덜 부끄러운 존재가 되길 바랐어요.”

이 경험은 휠체어 꾸미기 키트를 직접 만들어 기부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휠토핑(휠체어+토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누구나 쉽게 문구점에서 살 수 있는 재료로 휠체어를 꾸밀 수 있도록 구성했다. 병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워크숍도 열었다.

구르님의 도전은 계속…

지난해 3월 김씨는 단기 연수로 6주간 호주를 방문했다. 당시 호주 토르케이 해변에서 서핑을 배워 본 경험은 그의 인생에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였다. “뭐든 해도 된다”며 독려하던 김씨 부모님과 달리 김씨가 졸업한 학교의 교사들은 “위험하니까 안 된다”며 김씨를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당연히 김씨는 서핑을 하는 시간에도 바닷가에 가서 서핑하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의 서핑 강사는 당연하다는 듯 김씨에게 서핑복과 보드를 건네고 방법을 설명했다. “장애인에게 서핑을 가르쳐 본 적 있나요?”라고 묻자 그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표정과 함께 “8년간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가르쳐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씨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그제야 알았다. 그 해변에서, 내가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나는 그곳에서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발견했다. 누구도 내 참여를 의심하지 않는 순간, 나는 파도 위에 엎드려 보기로 했다.’

김씨의 콘텐츠들도 이런 그를 닮아 다채롭고 호기롭다. 흔히 말하는 ‘장애인 감동 서사’와는 거리가 멀다. 밝은 면만 비추려 애쓰지도 않는다.

김씨는 “처음에는 적어도 지금껏 보고 자랐던 대중 미디어 속의 장애인 모습을 답습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대중 미디어에서는 장애인의 삶이 슬프다고만 여기기 때문에 억지로 더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상 제작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수록 고민도 달라졌다. 그는 “예전에는 ‘내 삶에는 우울함이 없다’는 식으로 영상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최현규 기자

“저도 슬플 때가 있고 우울하고 엉망일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너무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려다 보니 그것도 결국은 진짜 제 모습이 아니더라고요.”

장애 콘텐츠는 대중의 주목을 받을수록 감동 서사에 갇히기 쉽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장애라는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를 강조하거나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는 존재로 그리며 소위 ‘인류애’를 느끼라는 식이라서다. 김씨는 이런 접근을 일관되게 경계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김씨는 자신의 어두운 면을 억지로 숨겨 왔다고 했다. “제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순간 사람들이 ‘그것 봐. 너도 결국 장애 때문에 힘들고 우울한 거잖아’라고 생각할까 봐 무서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내가 보여주는 삶을 모든 사람이 우울하게만 받아들이진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이제는 사람들을 조금 더 믿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이 더 넓어지길 바란다. “장애가 있으면 장애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아직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누군가의 연인이기도 하고, 여행자이기도 하고, 때론 기후위기나 정치 이슈에 관심 많은 사람이기도 해요.”

김씨가 즐겨보는 외국의 장애 크리에이터들은 환경 문제나 복지 정책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한다. “트럼프의 메디케이드(Medicaid) 정책이 장애인을 죽이고 있다”는 식이다. “모든 이슈는 장애 이슈이기도 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장애인은 어디에나 있고 그렇다면 어떤 주제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