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제총은 잔인한 범행 현장이 아닌 철거 현장에서 먼저 선보였다. 1977년 4월 20일 광주 무등산에서 ‘무등산 타잔’으로 불린 박흥숙(23)이 인근 판자촌을 불태우던 철거반원 4명을 사제총으로 위협한 뒤 살해했다. 쇠파이프로 만들었는데 총알을 발사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전후로 철거민 시위에서 간간이 나타났다. 1999년 6월 경기도 수원에서 철거민들이 경찰을 향해 사제총을 발사했다. 쇠파이프로 만든 길이 70㎝ 가량으로 공기총 탄환의 탄두 대신 쇠구슬을 박았으며 발사 거리가 100여m에 달했다. 몇몇 의경이 다쳤다.
IT 발전은 무기의 대중화를 불렀다. 컴퓨터용 3차원 모델을 사용해 실물을 만드는 3D 프린터가 쉽게 값싼 무기 제조를 도왔다. 2019년 10월 독일 할레에서 극우인사가 유대교회당을 향해 3D 프린터로 만든 총기를 난사, 2명이 숨졌다. 지난해 미국 최대 보험사 유나이티드 헬스케어의 브라이언 톰슨 최고경영자(CEO)가 3D 프린터 총을 맞고 숨졌다.
그래도 한국은 민간인의 총기 소유가 금지돼 총기 청정국으로 불린다. 과거 시위 현장에서의 사제총은 조악한 편인데다 살상용이 아닌 위협용에 가까웠다. 하지만 약 10년 전부터 총기 안전지대로서의 입지가 흔들렸다. 2013년 대구에서 사제 총기 난사로 경찰 등 3명이 부상을 입더니 2016년 서울 오패산에선 경찰 한 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사제 총기로 사망에 이른 첫 사례였다. 지난 대선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총기 테러 위협에 방탄복을 입고 유세에 나섰다.
인천 송도에서 아들을 사제 총기로 살해한 60대 남성의 사건은 충격적이다. 자식을 총으로 쐈다는 것, 60대가 유튜브 보고 쉽게 총을 만들었다는 것 모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가족에 대한 열등감, 은퇴한 ‘60대 남성(육대남)’의 박탈감 등이 원인으로 떠오르나 정확지는 않다. 무서운 건 한국에서 저성장·고령화로 모든 연령대에 분노가 켜켜이 쌓이는 와중에 사제 총기 등 무기 접하기는 쉬워졌다는 점이 아닐까.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