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고무줄놀이할 때 부르는 노래를 직접 작곡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던 소녀는 가정 형편상 음대 대신 약대에 진학했습니다. 결혼 후에도 음악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그는 남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음악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서양 음악과 국악을 접목하는 시도로 음악계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찬송가 581장 ‘주 하나님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를 작곡한 신영순(78) 교수입니다.
지난 22일 부산 해운대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신 교수는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국악의 세계화에 관심을 가졌다”며 “찬송가 581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이렇게 부흥시켜 주셨는데 이 기적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이 부흥하고 회복되길 바라며 작곡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부산대 약학과와 고신대 종교음악과를 졸업한 후 부산대 대학원 음악학 석사, 영남대 대학원 국악학 석사, 계명대 대학원 음악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 작곡 디플롬과 이탈리아 로마아카데미 지휘 디플롬을 마치고 미국 미네소타신학대학원 음악목사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문화축전 ‘허황후’를 작곡했고 관현악곡 합창곡 실내악 무용음악 500여곡을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부산극동방송에서 찬양 프로그램 ‘샤론의 꽃’을 진행하고 있으며 GOODTV 예술총감독이자 국제사이버신학대학원(ICS) 교수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1998년 작곡한 찬송가 581장은 엄원용 목사가 쓴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그는 “엄 목사님이 나에게 자신이 쓴 시집을 보내줬는데 그중에서 ‘주 하나님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며 “시에 맞춰 곡을 쓰고 찬송가 공모전에 출품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번의 면접과 회의를 거쳐 2006년 ‘21세기 찬송가’에 이 곡이 실리기로 결정됐을 때는 ‘가문의 영광’이라 표현할 정도로 기뻤다고 합니다.
“주 하나님 이 나라를 지켜주시고/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세워 주소서/ 이 민족을 은혜로써 주의 백성 되게 하사/ 우리 모두 구원받아 살게 하소서” 가사에 담긴 절실한 기도에 걸맞게 한국교회에서는 나라를 위한 예배를 드릴 때 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신 교수는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서 계엄 등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을 때 매주 이 찬송가를 불렀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찬송가는 후손들이 대대손손 부르게 될 권위 있는 책인데 내가 작곡한 곡이 전국 교회에서 불린다는 게 참 감격스러운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시편 150편을 모두 작곡하는 것입니다. 현재 50편까지 작곡을 마쳤습니다. 이 목표는 목사 안수까지 받은 그가 신학적 음악적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역이라고 생각해 남편과 함께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나 몇 년 전 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력자인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절망에 빠졌습니다. 부산대 약학과 선배로 약국을 운영한 남편은 수익의 90%를 신 교수에게 후원하며 그가 마음껏 음악을 공부하고 작곡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한테 화가 나서 2년여 동안 작곡을 안 했어요. 이제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음악을 만들어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지난해 ‘일어나라 함께 가자’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작곡한 찬송가와 시편을 발표하는데 정부 후원을 받게 됐어요. 종교적 색채가 강한 공연은 후원을 받기가 힘든데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하기 위해 계획하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힘을 얻고 다시 시편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신 교수는 요즘 ‘모세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120세까지 눈이 흐려지지 않았던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시길 간구하며 시편 작곡을 완성하려 합니다. “한 곡 한 곡 써 내려 가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남편이 참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훗날 한국을 사랑한 작곡가, 한국의 창작 음악을 세계에 알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작곡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부산=글·사진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