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반침하, 인식 전환 필요한 때

입력 2025-07-24 00:30

최근 도심에서 발생한 지반침하 사고는 단순한 일회성 재난이 아니다. 사고의 이면에는 도시화로 인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시의 지하에는 수십년 된 상·하수도관, 우수관, 통신관, 공동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이미 노후화돼 교체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대규모 건설 공사와 지하 개발이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지하공간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뤄졌고, 체계적 관리와 선제적 투자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지반침하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앞으로도 지반침하는 사회문제가 될 것이고, 위험성도 증가할 것이다. 도심지 개발은 지속될 것이고,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 현상도 더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근 지하 개발과 건설 공사에 따른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법·제도 등이 생겨났다. 그러나 규제나 제도가 현장에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그리고 그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하 안전을 위해 노후된 시설물을 파악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체계적으로 정비하며, 지반 상태에 대한 정밀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굴착공사장의 시공관리 및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데에도 충분한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건설 공사 시 요구되는 예산 절감이나 공기 단축의 개념 역시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이는 축적된 기술로 실현되는 것이고, 기술과 비용이 뒤따르지 못하는 무리한 공기 단축은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전을 얻기 위해서 ‘비용’을 지불해야 함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이 시설을 만들고 이용하는 건설기술자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명일동 사고 이후 서울시가 추진 중인 ‘지하공간 안전관리 혁신안’은 이러한 인식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지하 안전을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해 조직적 대응 기반을 마련하고, 노후 하수관로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 밖에도 대형 굴착공사장에 대한 월 1회 지표투과레이더(GRP) 탐사와 대시민 결과 공개, 실시간 센서 기반의 예측 기술 도입 등은 기술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이와 함께 각종 제도 개선, 굴착공사장 안전관리 강화 방안 등은 정책·구조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지반은 도심지 개발에 따라 수십년 동안 서서히 아파왔고 최근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하 안전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지하 안전을 위한 정책은 꾸준한 관심과 투자, 기술개발로 병들어 있는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하 안전은 누군가만의 숙제가 아니다. 시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며, 행정·정책·기술·산업·시민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앞으로 이런 가치를 담은 정부와 서울시의 대응을 기대해 본다.

황영철
한국지반공학회 회장
상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