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공공·민간 펀드 기반한
정부 주도의 ‘소버린 AI’ 계획
과거 윈도·안드로이드 종속
벗어나기 위한 국산화 전략
모두 실패했던 경험 되새기길
AI 3대 강국 진입하려면
반시장적 규제부터 완화하고
혁신 생태계 구축해가야
정부 주도의 ‘소버린 AI’ 계획
과거 윈도·안드로이드 종속
벗어나기 위한 국산화 전략
모두 실패했던 경험 되새기길
AI 3대 강국 진입하려면
반시장적 규제부터 완화하고
혁신 생태계 구축해가야
최근 ‘소버린(Sovereign) 인공지능(AI)’이 화두다. 소버린 AI는 특정 국가나 기업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가 주도해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정부의 통제 아래 운영하는 체계를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AI 시장에서 AI 주권을 지키고 AI를 기반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정부는 5년 내 AI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100조원의 공공·민간 투자 펀드를 조성해 소버린 AI를 구축할 계획이다. 산·학·연에 산재돼 있는 파편화된 기술들을 한데 모아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다.
과거에도 신기술의 출현으로 형성된 시장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만큼 성장하면 시장을 지배하는 글로벌 기업의 기술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기술 주권과 안보를 기치로 정부 주도의 기술 개발을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 정보화 시대에는 MS 운영체계(OS)인 윈도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바일 시대에는 안드로이드와 iOS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 주도로 오픈소스 기반의 OS를 개발하고자 했다. 또한 클라우드 시대에 접어들면서 데이터 주권을 지키고 아마존의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 주도의 클라우드 국산화 전략이 추진됐다.
하지만 매번 전문인력 부족과 기술 격차 등으로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실패했다. 또한 사용자 관점이 아닌 공급자 관점에서 개발돼 편이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호환성이 부족해 높은 전환 비용이 발생하면서 기존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된 강력한 생태계에서 시장 확대에 실패했다. 일부 기술은 현재 공공부문에서 의무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행정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현장에서는 지속적으로 의무적 사용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형 기술의 실패는 기술 자체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책적 무리수로 인해 관련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민간 수요와 경제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정권 단위의 단기 실적 중심으로 개발된 기술은 공공 영역에서 시범적으로 적용된 이후 더 이상 시장을 확대하지 못하고 사장되기 일쑤였다. 또한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 기반의 인터넷 보안 체계나 모바일 플랫폼의 표준화를 위해 개발된 위피(WIPI)처럼 국제 표준과 무관하게 개발된 기술이 관련 산업을 글로벌 생태계로부터 고립시켜 산업의 성장을 저해한 사례도 있다. 소버린 AI 구축 과정에서는 민간이 사용자 관점에서 개발과 운영을 주도하고 정부는 성장을 위한 인프라를 지원하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해마다 생성형 AI의 파라메터 수가 10배씩 증가하면서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가 등장하고 그 파급 효과가 산업 전반에 미치고 있는 시점에 AI 경쟁력 확보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함에는 이견이 없다. AI 종합지능지수 20위권을 살펴보면 미국 기업 모델이 14개, 중국 기업 모델이 5개가 포함돼 있으며 프랑스 기업 모델 1개가 14위에 위치해 있다. 국산 모델의 순위가 프랑스 기업 모델의 순위를 앞지르면 외형적으로는 AI 3대 강국 진입이 가능하지만 승자독식 구조를 가진 AI 시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AI 관련 핵심 기술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자체 모델 개발도 중요하지만 AI 전환을 통해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고 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이 조성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부 주도로 전국 단위의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 최초로 보급됐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관련 서비스 기업의 출현은 전무했고 관련 산업의 성장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경험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노동 시장과 자본 시장의 반시장적 규제를 완화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또한 소버린 AI 기반의 자립을 위한 전략이 자칫 글로벌 생태계로부터의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소버린 AI 구축은 AI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사회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작업이다. 한국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생성된 데이터의 학습을 통해 축적된 지식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양질의 데이터가 학습에 충분히 공급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빅테크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 확장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