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공수가 바뀌었다. 당시에는 야당이 이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굉장히 공세를 했고, 지금은 바뀐 것이잖나. 역지사지해보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호 국회 교육위원장이 지난 16일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료 제출을 둘러싼 여야 공방을 중재하면서 한 말이다. 후보자의 ‘제자 논문 표절’ 등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더 많은 자료를 제출하라는 국민의힘과 이 같은 요구가 과도하다는 민주당의 입장이 3년 전 이주호 교육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와 정반대로 뒤바뀐 점을 짚은 것이다.
이재명정부 초대 내각 구성을 거치며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현행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정책관과 전문성보다 사생활 검증에 치중하고, 적극적인 자료 제출이나 진술의 신빙성이 보장되지 않는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청문회 개선론은 2000년 국내 도입 이래 유사한 지적이 거듭될 때마다 여야의 이해관계에 따라 불거졌다 잦아들기를 반복했던 정치권의 ‘단골 과제’다.
인사청문 제도는 2000년에 처음 도입됐다. 김대중정부 세 번째 국무총리인 이한동 총리가 ‘1호 대상자’였다. 인사청문 제도 도입은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다. 공개적 검증을 통해 고위 공직자의 부패를 걸러내고 능력 부족으로 인한 국정 파행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처음엔 국회가 임명 동의 또는 선출하는 직위에 대해서만 실시됐던 인사청문회는 이후 25년간 꾸준히 확대됐다. 현재는 국무위원 전원과 헌법재판관, 방송통신위원장,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등 60개 넘는 직위가 국회의 인사청문 대상이다.
인사청문회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내실 측면에선 큰 진전이 없었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여당은 사생활 관련 의혹이 나올 때마다 ‘신상털기’라며 후보자를 엄호하고, 야당은 자료 제출·해명이 미비하다고 비판하며 낙마에 총력을 쏟는 구도가 반복됐다.
청문회장이 여야 정쟁의 최전선이 되면서 공직이 기피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문회 때문에 다들 장관 자리를 고사한다”는 정권의 구인난 넋두리가 끊이지 않는다.
여야, 머리 맞댔지만 결과 못내
인사청문회법 개정 필요성에는 여야가 공감한다. 박규찬 전 국회 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국회의정연수원 교수)은 지난해 의정논총에 실린 ‘인사청문 제도 연구’에서 한국 인사청문 제도가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로 △신상 문제 검증과 업무 능력 검증의 구분 △자료 제출 요구 조항 정비 △공직 후보자의 허위진술 처벌 및 답변시간 보장 등을 제시했다.
정치권에서도 개선 시도가 꾸준히 있었지만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2017년엔 여야가 합의해 국회 운영위원회 산하에 인사청문 제도 개선소위라는 별도 논의 기구를 설치하며 머리를 맞댔으나 성과는 없었다.
인사청문회법 개정안도 여러 차례 발의됐다. 주로 비공개 검증과 공개 검증으로 이원화하거나 후보자의 자료 제출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하지만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의미 있는 법 개정은 번번이 좌초됐다.
극단을 달리는 여야는 인사청문회 패싱도 남발했다. 윤석열정부에선 야당이 국회 의석 다수를 점한 상황에서 29명의 장관급 인사가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됐다. 문재인정부 때도 34명이 임명 강행됐다. 국회 스스로 청문회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文정부때 시민단체 반발로 무산
여당이 된 민주당은 인사청문회 이원화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도덕성 검증(비공개)과 전문성 검증(공개)을 분리해 실시하자는 취지다.
허영 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일 발의한 인사청문회법 일부개정안은 인사청문회를 비공개인 ‘공직윤리청문회’와 공개인 ‘공직역량청문회’로 이원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대신 인사청문 자료 제출 의무를 강화하고, 사생활 침해가 우려되는 경우 자료 비공개 열람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을 함께 담았다. 허 의원은 “인사청문회를 이원화해 사생활이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사항에 대한 정치적 악용을 방지하는 동시에 정책 및 전문성에 대한 검증을 보다 투명하게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공개 청문회’가 자칫 ‘깜깜이 청문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문재인정부 시절인 2020년에도 민주당은 도덕성 검증을 비공개로 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시민단체의 반발에 부닥쳤다. 당시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민주당의 개정안과 같이 비공개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더는 고위 공직 후보들의 부동산 투기, 부적절한 주식 투자, 탈세 등의 문제를 국민이 알기 어려워질 것”이라며 “문제는 공직 후보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이 아니라 최소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인물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 인사 시스템의 실패에 있는 것”이라고 비판 성명을 냈었다.
거여 강행 땐 정치적 의도 의심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입장에서는 법 개정을 강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야 합의 없이 법안을 밀어붙이면 정권의 인사 검증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다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아 국민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 인사청문회가 실질적인 인사 검증을 할 수 있도록 뜻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의 인사청문회는 한 마디로 논문 적게 쓴, 자녀 없고 미혼인 후보자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라며 “여야를 떠나 입법부로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함께 견제한다는 취지를 되새겨야 한다”고 말했다.
송경모 성윤수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