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증평군은 충북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내세운다. 중심에 위치하면 유명할 법도 한데 여행자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다. 과거 괴산에 속했다가 1991년 충북도 직할 임시행정구역인 ‘증평출장소’로 바뀐 뒤 2003년에야 비로소 ‘증평군(郡)’으로 독립된 신생 기초지방자치단체다.
증평군 면적은 82㎢로, 국내 82개 군 단위 지방정부 가운데 섬(島)인 울릉군(72.56㎢)을 제외하면 육지에서 가장 작다. 하위 행정구역은 증평읍과 도안면이 전부다. 이렇게 좁은 땅에 매력적인 여행지가 의외로 적지 않다. 증평군은 ‘작지만 강한 관광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증평의 대표적인 두 여행지는 증평읍의 좌구산과 도안면의 에듀팜관광단지(벨포레리조트)다.
좌구산(657m)은 거북이 앉아 있는 형상으로, 증평과 청주 일대 최고봉이다. 자연휴양림 초입에 대형 출렁다리가 들어섰다. ‘좌구산 명상구름다리’다. 길이가 무려 230m로 다리를 걸으면 양쪽으로 허공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내려다보면 다리에서 계곡까지 약 50m 높이가 아찔하다. 다리 건너편 하트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면 구름다리가 잘 나온다. 휴양림은 숙박시설과 오토캠핑장, 1.2㎞ 길이의 줄타기 시설 등도 갖췄다.
산 위쪽에 좌구산천문대가 자리한다. 천문대 앞에 서면 시뻘건 태양 구조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반구형 돔 스크린이 설치된 천체투영실의 둥근 외관을 태양으로 꾸민 것이다. 그 앞에는 토성과 목성 등 태양계 모형이 있다.
밤에는 주변에 도시의 불빛이 없어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356㎜ 굴절망원경이 설치돼 작은 망원경으로 볼 수 없는 다양한 천체의 모습을 관찰하기 좋다. 여름철에는 토성과 목성 등을 찾아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다.
좌구산 휴양시설은 바로 앞 율리마을까지 한 묶음이다. 증평이 자랑하는 인물 백곡 김득신(1604~1684)의 묘소가 있는 마을이다. 김득신은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의 손자이자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의 아들이다. 효종이 ‘이 시대의 으뜸’이라고 칭찬한 조선시대 문인이다.
하지만 그는 천연두 후유증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느린 학습자에 가까웠다. 반복과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김득신은 읽고 또 읽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책을 잡으면 수없이 반복해 읽었다. 그는 1만 번 이상 읽은 책 36편을 적은 독서기록 ‘독수기(讀數記)’에 ‘백이전’을 11만1000번, ‘노자전’을 2만 번 읽었다고 적었다. ‘독서왕’이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그의 묘비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보통 위인이라면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다고 자랑하는 것과 반대다.
마을 앞 담장과 공원에 그의 일생을 기리는 조형물이 몇 개 설치돼 있다. 큰길에서 마을 뒷산 언덕의 묘소까지 약 400m 구간을 ‘김득신 문학길’이라 이름을 얻었다. 읍내에 ‘독서왕김득신문학관’이 있다.
율리마을 인근에 삼기저수지가 있다. 증평, 청원, 괴산 등으로 가는 세 갈림길이 있다고 해서 삼기(三岐)다. 삼기저수지 일대는 예부터 등잔걸이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저수지를 따라 ‘등잔길’이 조성돼 있다. 등잔길 곳곳엔 갓 쓴 김득신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중부권 최대 종합 레저 휴양 관광 단지 벨포레리조트는 수려한 자연 속에 친근한 동물을 만나는 여행지다. 벨포레는 ‘아름다운 숲’을 뜻하는 이름으로, 두타산을 두르고 원남저수지를 품고 있다. 2019년 개장한 이곳은 골프 코스와 콘도, 놀이동산, 정원, 레스토랑 등 다채로운 시설을 갖췄다. 목장은 벨포레리조트에서 가장 활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보어염소와 오리, 거위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터줏대감 면양이 초원에서 풀을 뜯으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낸다. 목장의 마스코트는 날쌘돌이 보더콜리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국경 지역에서 양몰이 개로 활약한 종으로, 학습 능력이 뛰어나고 민첩하며 사람과 친화력도 좋다. 두타산 자락을 따라 내려오며 계절의 바람을 고스란히 느끼는 익스트림루지, 원남저수지에서 즐기는 요트와 360도 회전 제트보트 체험 등도 시원한 여름을 보장한다.
여행메모
벨포레목장 양몰이… 증평장뜰시장 순대와 짜글이 식당
벨포레목장 양몰이… 증평장뜰시장 순대와 짜글이 식당
수도권에서 좌구산으로 가려면 중부고속도로 증평나들목이 가깝고 편하다. 중부로→광장로→율리삼거리를 지나면 닿는다. 벨포레 리조트는 증평나들목에서 괴산·증평 방면 좌회전해 중부로→인삼로→벼루재길 등을 거친다.
좌구산 천문대는 하절기에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당일 날씨와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벨포레목장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양몰이 공연은 월~금요일에는 오전 11시 30분과 오후 2시 30분에, 토·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오전 11시 30분과 오후 1시 30분, 오후 3시 30분에 진행된다. 기온이 30도 이상일 경우 동물 복지를 위해 공연이 제한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인삼과 돼지고기가 많이 거래되는 증평장뜰시장 안에 순대와 ‘짜글이’ 식당이 많다. 짜글이는 넓은 냄비(불판)에 돼지고기를 자글자글 끓여내는 음식이다. 두루치기와 비슷한데 김치와 양파, 고추장과 고춧가루 등 쓰이는 채소와 양념에 맛과 빛깔이 달라진다.
증평=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