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석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재계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만나는 정상회의와 함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CEO 서밋이 APEC 정상회의 주간의 주목도와 흥행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재계는 APEC CEO 서밋 의장을 맡고 있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빅샷(거물)' 초청에 발 벗고 나선 상태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 영향력 큰 기업인들이 핵심 공략 대상이다.
APEC CEO 서밋은 회원국 정상들과 CEO들이 만나 글로벌 어젠다를 논의하는 경제인 행사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의 연례 국제회의로 1996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다. 오는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APEC CEO 서밋에는 글로벌 기업의 CEO와 고위 임원 등이 1700명 이상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상의는 APEC 개최로 인한 경제 효과가 7조4000억원, 취업 유발 효과가 2만2634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급적 많은 CEO들이 경주를 찾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비즈니스 성과를 내도록 한다’는 게 최 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지난 18일 경주에서 열린 APEC 경제인 행사 추진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서밋은 글로벌 빅샷들이 대거 참석하는, 그야말로 지구촌 CEO 정상회의가 되도록 해야 한다”며 “각 그룹이 보유한 글로벌 네트워크와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CEO 초청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지난주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픈AI 본사를 방문해 올트먼을 만났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 오픈AI와 SK그룹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APEC CEO 서밋 참석을 직접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젠슨 황, 순다르 피차이 등 IT 거물들에게도 초청장을 발송하며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말엔 128개국 상공회의소 회장과 116개국 주한 외국대사에세 서한을 보내 APEC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당부하기도 했다. 주요 CEO들의 참석 여부는 서밋 개최에 임박해서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ABAC) 의장을 맡고 있는 조현상 HS효성 부회장도 전면에서 뛰고 있다. 조 부회장은 지난 2월 호주 브리즈번을 시작으로 4월 캐나다 토론토, 이달 베트남 하이퐁을 잇따라 방문해 경주 APEC을 홍보했다. 지난 15일에는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CEO 서밋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줄 것을 직접 요청했다. 이어 하노이로 이동해 베트남 정부 인사들과 재계 리더들, 각국 대사들을 만나 APEC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조 부회장은 지금까지 3번의 회의에서 검토된 안건을 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4차 ABAC 회의에서 최종 확정하고, 확정된 건의문을 ‘ABAC 위원·APEC 정상 간 대화’ 세션에서 APEC 정상들에게 직접 전달한다. 건의문에는 APEC 21개 회원국 기업들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교역 환경 개선을 위해 논의한 정책 제언이 담길 전망이다.
대한상의는 이번 APEC CEO 서밋의 차별화 전략으로 과거 서밋보다 기간이 하루 늘었다는 점, 스타급 CEO 초청을 확대한다는 점, 정상과의 1대 1 미팅을 진행한다는 점을 꼽고 있다. 2022년 태국, 2023년 미국, 2024년 페루에서 열린 APEC CEO 서밋은 3일간 진행됐지만 경주 서밋은 첫날 환영만찬까지 더해 4일로 늘었다. 서밋에 참석하는 연사도 77명으로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CEO들의 소통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미래기술을 주제로 한 ‘퓨처테크 포럼’, 국내 첨단기술 기업들을 알리는 ‘K-테크 쇼케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APEC 지역별 와인과 한국 전통주를 맛볼 수 있는 ‘와인&전통주 페어’, 함께 방한한 배우자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공연과 미술 전시, K뷰티 체험도 기획 중이다.
다만 경주의 기반시설이 대형 국제회의를 치르기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하루 최대 7700명, 연인원 3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현재 숙박 시설과 음식점 등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정상회의 기간 공식 행사장으로 활용될 보문관광단지와 국립경주박물관, 경주화백컨벤션센터 등은 9월 완료를 목표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주요 호텔들도 일제히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이달에만 두 차례 경주를 찾아 정상급 숙소부터 실무인력들이 머물 각급 숙박 시설 등을 둘러보고 서비스 준비 현황을 점검한 것도 녹록치 않은 상황임을 보여준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만일에 대비해 부산 등 인근 도시의 숙박 시설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상의는 행사장에서 차량으로 약 40분 떨어진 거리에 기업인용 대형 크루즈 호텔을 운영할 예정이다. 현재 검토되고 있는 버뮤다 국적의 850실 크루즈와 파나마 국적의 250실 크루즈 등 총 2대를 활용하면 11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대한상의는 숙소 부족을 해결하는 동시에 크루즈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