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제 옥중 입장문에서 “말도 안 되는 정치적 탄압은 저 하나로 족하다”고 말했다. 계엄에 대해선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절체절명의 위기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계엄이 올바른 결단인지는 역사가 심판할 몫”이라고 했다. 반헌법적 계엄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민의의 전당에 총 든 군인을 투입한 걸 아직도 정당화하고 있으니 궤변이 따로 없다. 정치 탄압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더더욱 황당하다. 시대착오적 계엄으로 국격이 추락하고, 국민이 고통받은 것은 돌아보지 않고 본인의 어려운 처지만 호소한 격이다.
전혀 반성할 기미가 없는 전직 대통령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한테 발목 잡혀 국민의힘의 혁신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윤희숙 혁신위원장은 22일 “당이 혁신위 안을 적극 수렴할 움직임이 없다. 혁신안을 고사시키는 경로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며칠 전엔 자신이 쇄신안을 제안한 뒤 “당에서 다구리(몰매)를 당했다”고 토로했다. 친윤 주류가 국민 앞에선 혁신하겠다면서 기구를 꾸리고선 뒤로는 찍어 누르기만 하고 있으니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요즘 당에선 혁신은커녕 윤 전 대통령을 추앙하는 ‘윤 어게인’ 움직임이 오히려 더 활발하다. 혁신위 활동에 대해 친윤계가 되레 “내부 총질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키우고 있고, 계엄을 옹호하는 아스팔트 극우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해 세를 넓히고 있다. 게다가 전씨는 “전한길을 품는 자가 당대표가 된다”면서 다음 달 전당대회마저 좌지우지하려는 태세다. 오죽하면 당에서 친길(친전한길)계니, 길핵관(전씨 핵심 관계자)이란 말까지 나오겠는가.
국민의힘이 제대로 혁신하고, 제1야당 위상을 빨리 회복해야 건강한 국정 견제세력이 될 수 있고 그게 나라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러진 않고 어렵게 꾸린 혁신위 활동을 유야무야로 끝낸다면 더는 스스로 재기할 능력이 없는 당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또 극우 세력을 출당시키지 않고 당을 흔들게 놔둔다면 ‘내란 정당’ 이미지는 더욱 굳어질 것이다. 전대가 혁신을 경쟁하는 장이 아니라 ‘극우 놀이터’가 된다면 당 해체 목소리는 더욱 비등해질 게 뻔하다. 지도부와 친윤계가 이런 우려를 직시해 더는 혁신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공당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라면 나라와 당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혁신이라는 시대적 대의를 거스르는 것은 곧 민의를 거스르는 일임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