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틈

입력 2025-07-23 03:03

삶은 숨 막히는 진행형. 틈이 있는 인생, 틈이 있는 사람이 좋다. 세상은 자꾸 가득 채우라고 한다. 달력의 칸마다 할 일을 써넣고 꽉 찬 통장, 꽉 찬 일정, 꽉 찬 냉장고 그리고 빼곡한 경력을 재촉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다운 것은 언제나 비어 있는 ‘틈’에서 피어난다. 잠시 멈추어 숨 쉬는 틈새로 새어 나오는 따뜻함이 향기로운 삶을 만든다. 한옥의 마당, 미술관의 텅 빈 복도같이 비어 있는 공간이야말로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다. 서예에서도 글자 못지않게 중요한 건 글자 사이의 여백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스 조각상은 일부러 비례의 틈을 남긴다.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는 거기서 진정한 미(美)를 본다. 쉼표가 없는 음악은 소음이 되고 틈이 없는 건축물은 숨 막히는 감옥이 된다. 도자기는 비었기에 물을 담고 창문은 틈이 있기에 햇살과 바람이 스친다. 틈은 낭비가 아니라 숨이다. 철학자의 방이다. 물결이 멎어야 강이 하늘을 비추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순간에 비로소 성찰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는 기다릴 틈을 주지 않는 기술과 함께 살고 있다. 찬물에 밥 말아 허겁지겁 넘기듯 SNS의 새롭고 수많은 자극을 보느라 생각이 뿌리내릴 틈조차 없다. 점심시간에도 유튜브를 보고 화장실에서도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한다. 심지어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한다. ‘내’가 없어지고 ‘그들의 이야기’로만 계속 채워간다.

진짜 사치는 비싼 명품 가방도 고급 레스토랑도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최고의 사치다. 아무도 부르지 않고 알림도 오지 않고 할 일 목록도 없는 그런 시간, 틈이 있는 이 시간이 가장 멋진 사치다. 여름 오후 나무 그늘에 누워 구름을 바라보던 시간,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던 순간들.

신앙도 틈이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믿음을 ‘채움’으로만 생각한다. 말씀으로 채우고, 기도로 채우고, 사역으로 채운다. 옳다. 그러나 ‘비움’ 또한 중요하다. 신앙의 비움이 신앙의 틈이다.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에도 기도 후에도 그 말씀과 기도가 성취되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내가 다 채우면 하나님이 일하실 자리가 없다. 내가 멈춘 틈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

사람도 틈이 있는 사람이 좋다. 매끈한 유리 같은 사람은 이웃의 눈물 한 방울도 스며들지 못한다. 옥양목같이 여백과 틈이 있는 사람은 이웃의 눈물을 흡수하며 긍휼이 있는 이가 된다. 추수할 때 낮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모퉁이는 남겨 두고 알곡 꾸러미도 대충 흘리는 사람이 좋다. 불쌍한 여인 룻은 누군가 흘려준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이 된다.

귀신을 쫓아내며 하나님의 능력을 펼친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 앞에서 사역 보고를 했다. 이때 예수님은 “저기 고지가 또 있다”고 하시면서 재촉하지 않으셨다. 이제 좀 쉬라고 하신다. ‘일보다 사람’이라고 하신다. 인간미 있고 틈이 있는 여백을 보여 주셨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막 6:31)

한재욱 강남비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