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평택 임신부가 창원 응급실로… 하루 17명 2시간 넘게 ‘뺑뺑이’

입력 2025-07-23 00:02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김지훈 기자

경기도 평택의 쌍둥이 임신부 A씨는 지난해 2월 새벽 갑작스러운 자궁 출혈을 겪었다. 하지만 응급실 90곳으로부터 신생아 중환자실과 전문의 부족을 이유로 ‘수용 곤란’ 통보를 받았다. 결국 300㎞ 떨어진 경남 창원으로 가야 했다. 길에서 보낸 시간은 2시간42분이었다.

부산 영도구의 B씨는 지난해 5월 갑작스러운 혈변과 오한으로 구급차를 불렀다. 의사 부족 등을 이유로 응급실 42곳에서 외면당했고, 결국 길에서 2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사이 B씨는 응급환자분류기준(KTAS)에서 최중증인 1단계로 악화됐다.

지난해 응급실을 찾아 2시간 이상 길거리를 헤맨 응급 환자가 하루 평균 17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시간 단위로 분석한 소방청의 첫 통계다.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병원 수용 지연 시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송 시간이 2시간을 초과한 사례는 전년(3233건) 대비 1.9배 늘어난 6232건이었다. 하루 평균 17명꼴이다. 올해는 6월 기준 3877건인데 현재 추이라면 전년 건수를 가뿐히 넘어설 전망이다. 이송 시간은 구급대원이 환자를 데리고 현장을 출발해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구급대원이 현장에 머무는 ‘체류 시간’도 급증했다.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한 탓이다. 체류 시간이 2시간을 넘긴 경우는 지난해 815건으로 2023년 452건보다 1.8배 증가했다. 1~2시간은 전년 3882건 대비 배 이상 늘어난 7890건이었다. 김성현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 구급국장은 “응급실을 찾는 전화를 오래 돌릴수록 환자를 이송할 병원의 거리도 멀어진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진료권역을 중심으로 설계된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하는 신호란 분석이다.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의·정 갈등과 의사 부족이 사태를 키웠다. 이건세 건국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진료권역별로 응급기관은 통상 30분~1시간 이내에 접근 가능하도록 배치돼 있다. 2시간 초과 이송은 지역 안에서 응급 대응이 안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진료권역이 제 기능을 못하면 체류·이송 시간은 기약 없이 늘어난다. 다른 권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응급의료를 담당하는 병원들이 권역 밖 환자 수용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담당 권역 안에서 발생한 응급 상황과 환자에게 우선순위를 두게 마련이다. 권역 밖에서 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 수용 요청이 들어오면 수용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