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구약의 사사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소견이 아닌 자기 소견을 왕으로 삼는 시대(삿 17:6)입니다. 그래서 약 350년간 그 사회는 어둡기만 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현대사회를 ‘죽어 있는 공동체’라고 묘사합니다. 억압이 아닌 자유의 과잉이 인간을 탈진시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사사 시대 이상으로 탈 진리, 과잉 자유의 피로사회입니다. 교회 역시 말씀보다 각 사람의 소견이 왕이 되는 자유 과잉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영적으로 탈진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무엘서의 주제는 기름 부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름 부음이란 단어가 7번이나 나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에게 기름을 붓습니다. 한나의 찬양에 나오는 고백인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사람의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해답을 줍니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한나를 달아 보셨다는 것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사무엘서 전체에 등장하는 왕 선지자 제사장 직분을 맡은 지도자는 물론 그 백성에 대한 평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달아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혼란스러운 사사 시대의 한복판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영광’이라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무겁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하나님의 의견’이란 뜻입니다.
조너선 에드워즈는 영광을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 내적 영광, 즉 본유적 영광으로 피조물의 승인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영광을 말합니다. 하나님 자신, 즉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의 총체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그분을 “영광의 하나님”(행 7:2)이라고 불렀습니다.
둘째는 외적 영광 ‘쉐키나’입니다. 피조물을 통해 높임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의 임재는 언제나 외적 영광으로 표현됩니다. 성막과 성전에는 언제나 이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영광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에게 가득합니다.(요 1:14)
사무엘서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상실, 인간의 책임과 존귀에 드러난 영적 무게감이 집중적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세우는 지도자마다 하나님 영광의 크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의 하나님이 행동을 달아보시는데 그 기준이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서 바벨론 왕 벨사살이 성전 기물을 술잔으로 사용하는, 반하나님적 행동을 하자, 하늘의 손가락이 나타나 그를 심판합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하룻밤의 향연 잔치가 죽음의 잔치가 됩니다. 놀랍게도 이는 200년 전 이사야가 예언했던 대로였습니다.
하나님의 저울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헤롯왕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자 벌레에게 먹혀 죽는 심판을 당했습니다.(행 12:21~23) 영적 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은 성공했고 영적으로 가벼운 사람들은 모두 실패자가 되거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인생은 그 중심에 누구를 놓느냐의 싸움입니다.(고후 10:3) 하나님은 지금도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저울에 당신의 영적 무게는 얼마나 되는가.’
김진호 목사 (반포제일교회)
◇반포제일교회는 국제독립교회연합회(WAIC)에 속해 있습니다. ‘제자를 넘어 강한 전사로’를 목표로 그리스도의 신부 영성을 지닌 모든 성도의 사역자화를 지향합니다. 김진호 목사는 미국 덴버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역사적전천년주의학회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