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코리아의 생태계가 무르익고 있다

입력 2025-07-24 03:08
지난달 7일 황성주(왼쪽) 회장을 비롯한 유럽재복음화 팀원들이 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 회장 제공

필자는 지금 빌리온소울하비스트(BSH) 사역 파트너인 미국의 스톨러재단과 FTF100(불붙는 곳에 기름붓는 전략)을 통한 신속한 세계 복음화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 휴스턴에 와 있다. 공항 근처 힐튼인에 머물고 있는데 이 호텔은 설립자 힐튼이 크리스천인 데다 독특한 철학으로 유명하다. 국제 체인망을 가진 이 호텔은 튀르키예의 경우 이스탄불 힐튼 호텔이 유명한데 호텔은 1955년 설립됐다. 보스포러스 브리지의 수려함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서문화를 잇는 장소로도 역사적 상징성이 크다.

힐튼 호텔의 설립자 콘래드 힐튼은 단지 수익을 위한 사업가가 아니라 호텔을 통한 평화를 꿈꿨던 인물이었다. 그는 호텔에 대한 명확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호텔은 전쟁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힐튼은 전쟁 전까지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호텔 산업이 위축되고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다.

전쟁 후 힐튼은 미국뿐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로 호텔 사업을 확장하면서 호텔을 국제적 소통의 공간, 문화 교류의 장, 이해와 평화를 촉진하는 플랫폼으로써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다. 그는 ‘관광 외교’라는 관점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함으로써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 그는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환대(hospitality)’라고 정의하면서 국적과 인종을 넘어 인류 전체의 평화 공존을 꿈꾼 세계시민주의의 대표적 리더로 살았다. 눈만 뜨면 들려오는 전쟁의 소문에 눌려 있는 현 상황에서 인류는 그가 말했던 “총이 아닌 침실, 폭탄이 아닌 대화, 전쟁이 아닌 환대를 통해 세계는 바뀐다”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트랙이론의 비공식적 대화 주목해야
독일 통일을 기념하는 통일교회 모습. 황 회장 제공

이 시점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영국 케임브리지 쥬빌리센터를 설립한 크리스천 학자이자 글로벌 평화중재자인 마이클 슐러터 박사의 트랙 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87~1991년 남아공 분쟁과 1994~1999년 르완다 분쟁을 모두 효과적인 대화 프로세스로 해결하면서 실질적인 교류와 공동 비전 형성, 이후 공식 평화 절차를 뒷받침했다. 일반적으로 트랙1은 정부 간 공식 외교나 고위급 협상을 의미하며 트랙2는 정부 외 민간인들(경제인 지식인 종교인 사회지도자 등)이 비공식적으로 만나는 대화 모임을 뜻한다.

이러한 관계적 접근은 참가자 간 신뢰 존중 공감 형성에 집중하면서 정치적 성과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 회복을 중시한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며 모든 발언은 비보도, 비기록이 원칙이다. 갈등 해소가 아니라 함께 상상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도출하는 데 중점을 두며 트랙2에서 형성된 합의나 공감대는 정부와의 연결을 통해 공식 프로세스로 이관된다.

이는 독일 통일의 경우도 슐러터식 트랙2의 방식이 직접 이끌진 않았지만 기독교 기반 평화 운동, 교회 중심 대화, 진실과화해위원회 등을 통해 관계적 회복과 신뢰 구축의 기반을 닦았기에 철학적으로나 실행 면에서 트랙2 방식의 협상 원칙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유럽재복음화팀과 함께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섰을 때의 감격은 남달랐다. 한때 베를린 장벽이 설치되었을 때 철조망 감시탑 군인들이 배치되며 브란덴부르크 문은 삼엄한 형태의 감옥문으로 전락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이제는 자유를 향한 대로가 열린 통일의 문이 되었다.

1989년 12월 22일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와 한스 모드로 동독 총리가 함께 이 문을 통과하고 동서독 수십만 인파가 환호하며 이 문을 배경으로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Wir sind ein Volk)”라고 외쳤던 현장에서 우리의 판문점도 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문으로, 다시 세계 평화의 아이콘으로 부활할 것을 기대하며 ‘주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한때 프로이센 제국의 위엄이었고 전쟁과 냉전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통일과 세계평화의 상징물이 됐다.

통일 코리아는 한·중·러의 전략자산

최근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면서 통일 코리아의 생태계가 무르익고 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시진핑 체제의 균열이 생기면서 통일의 돌파구가 열리고 있다. 중국은 지금 시진핑 장기 집권 체제가 내부 엘리트 균열과 사회적 피로감, 경제 구조 둔화로 흔들리는 가운데 포스트 시진핑 체제로의 전환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이런 변화 속에서 북한이라는 전략 자산의 무게를 다시 평가하면서 과거처럼 무조건 보호하는 ‘혈맹’이 아니라 경제 협력과 국경 안정이라는 실용적 계산의 대상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곧 한국 주도의 단계적 통일 구상에 중국이 소극적으로나마 중립화될 수 있는 전환점이 된다. 흔들리는 중국의 난제는 도덕적 헤게모니와 정치문화적 매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의 무리수에 의한 중국 군부 내 이상기후, 공산당 내부의 권력 구조 불투명, 최악의 경제 상황이 예정된 위기를 자초한 데다, 국민소득이 1만3000달러에 이르면서 시민의식 고양, 중산층 증가로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1인 독재를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가정교회의 폭발적 부흥으로 크리스천 수(1억5000만명 추정)가 공산당원의 수(1억명)를 능가하면서 민중 저변의 가치관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급격히 가까워진 북·러 관계도 통일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예정이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서방 제재로 유례없는 외교·경제적 고립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우크라이나와의 종전이 가까워진 상황에서 러시아는 극동 아시아로의 탈출구를 절실히 찾고 있는데 그중 가장 전략적이며 경제성이 높은 대상이 바로 통일 코리아이다.

러시아는 최근 북극항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총 2조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데 가스관, 송유관, 시베리아 철도, 자원 개발, 극동 물류망 등 모든 방향에서 통일된 한국과의 협력 없이는 전후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제 러시아는 ‘북한 체제 유지’보다 경제적 통합과 완충지대 역할로서의 통일 코리아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제 통일 코리아는 한·중·러가 모두 윈윈할 전략자산이다.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한반도는 더 이상 이념 전쟁의 무대가 아니라, 지정학적·경제적 플랫폼으로서의 엄청난 가치를 보유한 채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 모든 요소는 갈등을 넘어 협력으로, 대립을 넘어 공동이익으로 전환되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 통일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닌 이익의 집합점인 셈이고, 더 이상 주변국이 우려할 불확실성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이 주도적으로 통일 시나리오를 제시해 중·러·미·일 모두가 이익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국제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단지 민족통일의 꿈만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유라시아 협력의 새로운 축을 형성하는 평화의 설계가 가능해진 것이다. 북한도 경제는 붕괴 직전이고 핵무기는 더 이상 협상 카드가 아닌 정밀 타격의 명분으로 전락했으며 엘리트 집단조차 불안과 불신 속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국제 공조의 당근과 채찍으로 언제든 협상에 참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에 트럼프 정부의 미국제일주의와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가 큰 역할을 하리라 본다. 슐러터 박사는 “갈등은 권력 배분이나 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북통일도 정치적 합의 이전에 트랙2의 전략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가 멈춘 곳에서 하나님 일하셔
팀원들이 베를린 장벽 앞에서 통일 코리아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황 회장 제공

필자는 에스겔 47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전 문에서 흘러나오는 물(하나님의 임재)이 발목을 적시고 무릎을 채우고 허리에 이르며 결국 거대한 강줄기를 형성하는 것에 주목한다. 결국 이 물이 생명수가 되어 바다를 살리며 강가에 생명나무의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만국을 소생케 하는 약재료가 되는 평화통일, 궁극적으로 통일 코리아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샬롬이 이 땅에 임하도록 간구한다. 이제 한반도는 적대가 아닌 화목의 장소로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장소로, 편을 가르는 장소가 아닌 모두의 고통을 품는 대속의 장소로, 긴장이 가득한 곳이 아니라 평화의 땅이 되어 지상명령을 마무리하는 은혜를 열망하고 있다.

지난 80년간 쌓인 눈물의 기도, 그중에서도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숨죽인 기도와 순교의 피가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 속에서 통일의 열매를 맺으려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아니 통일을 넘어 남북이 하나 되어 세계선교를 완성하는 선교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다. 성도들은 민족의 제사장으로서 통일을 위한 중보자로 부름을 받았다.

통일은 수학 공식처럼 풀 수 없다. 하지만 슐러터 박사가 보여준 것처럼 트랙2의 만남,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메우는 작고 진실된 대화의 장으로 통일 코리아는 이 땅에 임할 고속도로가 된다. 트랙2의 대화는 정치가 멈춘 곳에서 하나님이 다시 일을 시작하시는 방식이다. 무너진 북한의 그라운드 위에 신뢰의 다리가 놓일 것을 선포하면서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을 불러본다.

황성주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