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 감동은 그날의 공기까지 기억된다. 중3 때 ‘러브 액츄얼리’를 보고 그랬다. 연말 시즌을 겨냥해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나열한 영화는 당시 사랑이 뭔지도 모르던 나에게 세찬 설렘을 안겼다. 친구들과 까르륵거리며 극장을 나서던 순간 12월 초의 쌀쌀한 바람이 발간 볼에 스쳤던 기억이 선명하다. 우리는 그때 영화의 OST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 멜로디를 흥얼거렸던 것 같다.
또 하나의 기억은 2016년 영화 담당 기자로서 ‘라라랜드’를 봤을 때다. 기자는 작품 소개를 위해 통상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미리 본다. 미국 LA 도로를 무대로 펼쳐지는 오프닝 장면부터 빠져들 듯 몰입됐다. 열렬히 사랑하며 꿈을 좇았으나 끝내 각자의 삶을 살게 된 남녀 주인공이 우연히 재회해 ‘만약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하다 번뜩 현실로 돌아오고 마는, 엔딩의 그 강렬한 여운은 나를 한동안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다.
코로나19가 막 퍼지기 시작하던 2020년 초 떠났던 문화체육부로 5년여 만에 복귀했다. 가장 크게 달라졌음을 체감하는 건 국내 영화시장 상황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도 최근 인터뷰에서 “극장 상황이 처참하다”고 우려했을 정도다. 올해 상반기 성적은 더 심각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개봉 영화 중 관객 300만명 이상을 동원한 건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야당’ ‘미키17’ 세 작품뿐이다. 4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단 한 편도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극장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고, 그 틈에 세를 불린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이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면서 영화계는 초토화됐다. 코로나19 확산 전이던 2019년 관객 2억2667만명이 극장에 몰려 역대 최대 매출액 1조9140억원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난해는 반토막 수준이었다. 전체 관객 수 1억2312만명, 매출액 1조1940억원에 그쳤다. 최악의 시기였던 2020, 2021년에 비하면 배로 늘어난 수치이긴 하다.
관객 감소로 영화 투자수익률이 낮아지면서 투자·배급사의 자본 투입이 줄자 제작 규모는 축소되고 볼 만한 영화가 만들어지긴 더 어려운 구조가 돼 버렸다.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회복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연도별 국민 1인당 영화관람 횟수를 보면 2019년까지 4회대를 유지했던 수치가 2020년 1회대로 곤두박질쳤다가 2022년부터 다시 2회대로 올라왔다. 연극·뮤지컬·콘서트 등 공연과 박물관·미술관 등 전시를 아우른 문화예술관람률 집계에서 영화는 여전히 43%(2023년 기준)에 달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보는 건 여전히 강력한 문화 경험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작은 화면에서 빠른 배속으로 재생하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곧바로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이탈해 버리는 OTT 콘텐츠와는 관람 집중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커다란 스크린과 생생한 사운드가 제공되는 극장이라는 단절된 공간에서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는 그 두어 시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극장을 찾는 일은 영화시장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전 국민 대상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더불어 영화 등 5대 분야 할인쿠폰을 지급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 반갑다. 이달 중 할인쿠폰이 지급되면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극장사 사이트에서 예약 시 내려받아 바로 쓸 수 있다. 올여름 극장가에 활기를 채우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권남영 문화체육부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