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불안해하지 않는 학자들을 보며

입력 2025-07-23 00:32

제자와 논문 소유권 다투는 교수를 보며…
책 한권에 인생 쏟아붓던 진정한 학자 생각나

첫 직장은 대학출판부였다. 무더웠던 여름날, 버스 차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처음으로 출근이라는 것을 했다. 교문 앞에는 그을린 얼굴의 수박 장수가 리어카를 놓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왜 하필 대학교 앞에서 수박을 팔고 있을까 생각하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수박은 물론 달고 맛있었겠지만, 대학생이 사서 먹기에는 워낙 크고 부담스러우니까.

그곳에서 내가 만들던 책들도 그랬다. 취향이란 다양한 법이니 애서가라면 제법 맛있게 읽을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크고 부담스러웠다. 19세기 조선과 청나라의 외교문서를 모아 엮은 두꺼운 해제집도 있었고, 일제강점기의 건축 도면을 모은 묵직한 도록도 있었다. 8세기 당나라 시인이 쓴 모든 작품을 망라하려는 전작집은 언제쯤 완간이 될지 가늠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워낙 진득하지 못한 성격인 터라 그런 무거운 책을 만드는 일이 적성에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을 제법 괜찮은 편집자라고 인정했던 기억도 드물다. 뭔가 다른 것, 예를 들어 돈가스 같은 걸 튀겨서 파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종종 했다. 괴로운 자책을 거듭하며 교문을 지날 때마다 묵묵히 서 있던 수박 장수의 긴 그림자가 눈에 밟혔다.

하지만 가끔은 설레는 순간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 명의 학자가 자신의 생을 쏟아부어 만든 역작을 출간할 때다. 따가운 햇볕을 참으며 캠퍼스의 오솔길을 걸어올라가 그의 연구실 앞에 선다. 호흡을 가다듬고 손때가 묻어 반들거리는 오래된 나무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하면 들어오세요, 하는 목쉰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연구실로 들어가면 오래된 책 냄새가 쏟아지듯 밀려온다. 그는 연신 땀을 닦는 내게 마실 것을 권한다. 기껏해야 티백 현미녹차나 졸업한 제자가 들고 왔을 법한 주스 정도다. 사람에게도 방에도 음료에도 한 점 허세가 없다.

책이 천장까지 쌓여 있는 이 작은 방이 그가 자신의 생애를 건 싸움터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곳에서의 몇 년 동안 나는 평생 읽을 책과 쓸 책을 모두 정해 둔 학자를 봤고, 오래된 역사의 한 부분을 복원하는 데 인생을 통째로 바치는 이를 만났다. 공부에 방해가 될 연락을 받지 않기 위해 이름과 학과, 이메일만 덜렁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산더미 같은 원고를 보따리에 싸서 내주며 몇 년 동안 점 하나, 획 하나를 모두 대조했으니 오탈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하지만 꼭 살펴봐 달라며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석학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책을 만드는 것은 기껏해야 1년에 대여섯 번이었고, 그나마도 계속 줄어들었다. 얄궂게도 대학과 사회가 모두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변모하던 때였다. 점점 더 학자들은 ‘객관적 연구 성과’로 판단받았고, 사회는 정책을 수립할 때 학자들의 자문과 용역을 필요로 했다. 대학에 있는 이들은 점점 더 바빠졌다. 옛 박사학위 논문 하나가 네댓 편의 학술지 논문으로 쪼개지고, 다시 연구비를 받아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그걸 기한까지 늦지 않게 만들어내는 것이 나와 동료들의 일이었다. 마음이 급하니 편집자의 확인 요청은 오히려 짜증스러운 일이 되곤 했다.

학계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둔 곳에서 노동을 하던 이가 학자들을 함부로 품평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교수가 연구실에 갇힌 서생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 위한 직함이 되어가는 모습은 분명히 봤던 것 같다. 공부는 점점 쓸모가 많아졌고, 불안해하는 학자들은 역설적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요즈음은 뉴스를 보는 일이 괴롭다. 제자와 논문의 소유를 다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함부로 수업을 중간에 그만두거나 녹음된 목소리만을 틀어도 불안하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보면 헐떡이며 비탈길을 올라가던 예전의 자신이 떠오른다. 땀을 닦으며 허리를 거듭 숙여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던 일, 그때의 맵싸한 책 냄새가 그립기만 하다.

김현호 사진비평가·보스토크 프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