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이너’는 미술판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입력 2025-07-23 02:10
게티이미지뱅크

솔비(권지안), 박신양, 하정우, 이민우, 하지원, 전현무….

이들은 가수, 배우, MC 등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면서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연 화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이태원에서 열린 ‘뻑: 온앤오프’ 전시에는 배우 조니 뎁, 가수 권지안, 김완선, MC 전현무 등 아트테이너(예술과 연예인의 합성어) 30명이 사이버 폭력, 기후 위기 같은 동시대 사회 현상을 주제로 설치, 조각, 비디오아트 등 1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솔비는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예술 활동을 하며 편견 섞인 시선을 받던 연예인들이 미술이라는 매개체로 하나가 되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편견 섞인 시선’이라고 조심스레 고른 표현에서는 기성 미술계에 대한 섭섭함이 읽힌다.

이들의 작품 활동은 미술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까. 미술계 메커니즘을 이야기하는 게 답이 될 거 같다. 대개 화가, 조각가, 사진가 같은 타이틀은 정규 미술 대학을 나오고 전시회를 열며 전업 작가로 활동할 때 주어진다.

미대를 나오지 않은 아마추어는 미술가 자격이 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40대 여성 작가 ‘고등어’(예명)는 미대 출신이 아니고 대학도 중퇴했지만, 2021년 홍콩 출신 기획자 융마가 예술감독을 맡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 초대받았다. 그의 나이 37세였다. 아마추어에서 출발했지만 미술계가 인정하는 ‘자격’이 고등어에게는 있었다.

작가의 자격?… 미술계 피라미드 올라타야

작가는 두 종류가 있다. 미술계(Art World)가 인정하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 미술계는 안개처럼 흐릿하다. 하지만 미술계를 형성하는 제도가 있기에 미술계에 대한 윤곽을 잡는 게 마냥 어렵지는 않다. 피라미드 혹은 등고선처럼 위로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는 제도권으로서의 미술계 자장은 엄연히 존재한다.

A갤러리 관계자는 22일 “누구나 자칭 작가는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로’로 인정받는 작가의 세계는 다르다. 등급을 나누는 것은 아니지만 미술계에서 인정하는 메인 필드는 분명히 있다. 미술계 시스템 안으로 일단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 괜찮은 미술관, 괜찮은 화랑의 큐레이터 눈에 띄어 미술계 사다리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는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공모전이나 기획전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주요 국공립미술관이나 리움, 금호미술관 같은 주요 사립미술관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신진 작가 발굴 기획전 ‘젊은 모색’은 국립기관의 권위에 힘입어 미술관과 화랑 기획자들이 괜찮은 작가를 찾는 필수 코스가 됐다. 고등어도 젊은 모색 전에 초대받으면서 미술계에 혜성처럼 떠올랐다.

고등어는 식이장애가 있어 미술치료를 받으며 그림을 그리다 블로그에 올린 작품으로 한 갤러리 대표의 눈에 띄었다. 아마추어임에도 개인전을 열게 됐고, 그 전시를 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의 제안으로 2008년 젊은 모색 전에 참여해 주목받았다. 고등어는 흑백소묘로 가부장 이데올로기에서는 온전한 존재였던 남성들을 세상의 반쪽으로 인식하는 전복적 사고를 표현해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사례는 작가의 자격이 미대라는 학벌에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기존 미술에서 가지를 뻗으면서도 기존 미술과 다른 새로움을 보여주는 데 있다. 고등어의 경우 정규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 것이다.

국공립기관과 사립미술관 등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입주도 중요한 1차 관문으로 인식된다. 레지던시는 무료나 저가로 1년간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 작업실을 공개하는 오픈 하우스 등을 통해 입주 자체가 미술계 인사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예인 작가든, 주변의 아마추어 작가든 이들이 미술계에 작가로 인정받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들에게 신인 작가 공모전이나 기획전, 레지던시에 참여한 이력이 있는지 살펴보면 된다.

그림값은 어떻게 정해지나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 정해진다. 넓게 보면 미술 상품도 그렇다. 미술품 경매에서 김환기, 이우환 등 미술사 거장들의 작품 낙찰 가격이 그런 수요와 공급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미술 대학이나 대학원을 갓 졸업한 신진 작가의 경우 수요가 거의 없고 공급만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가격이 매겨질까.

누군가는 “미대 졸업 친구의 작품 가격이 내 가격의 기준”이라는 우스개를 했다. 그만큼 처음 작품을 파는 신진 작가라면 남의 작품값 동향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작가 마음대로 작품 가격을 비싸게 불렀다가는 다음에 작품 가격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B갤러리 관계자는 “졸업하자마자 가진 첫 개인전에서 작품이 팔렸을 때 통상 유화의 경우 호당 5만원, 즉 100호에 500만원 정도를 기준 가격으로 한다. 여기에 특별한 재료가 추가되거나 작품 제작에서의 디테일, 동료 작가들과 비교한 이력 등을 고려해 값을 더하거나 내린다”고 했다. 같은 100호라도 F(인물:162.2×130.3㎝)형, P(풍경:162.2×112.1㎝)형은 서로 면적이 다르기 때문에 요즘에는 면적을 환산해 값을 매기는 문화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C갤러리 관계자는 30·40대 신인으로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으면 100호 기준으로 800만∼1200만원, 50·60대 중견이면 100호에 8000만원 정도가 일반적이라고 언급했다.

작품 가격의 추가 상승 요인으로는 주요 미술상 수상, 주요 미술 기관의 작품 소장 이력 등이 추가된다. 한국 작가들의 활동 범위가 해외로 확장되면서 해외 요인도 가격 상승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한국의 실험미술 대가 이건용(83) 미술가의 경우 2023년 페이스갤러리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진 뒤 페이스갤러리 전속이 됐다. 세계 최고 화랑으로 꼽히는 페이스갤러리 전속이 되면서 100호 가격이 16만 달러(2억2200만원)에서 20만 달러(2억7800만원)로 뛰었고, 수년이 지난 현재는 25만달러(3억4700만원)로 다시 값이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들은 대체로 작가들의 작품 가격 인상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한번 올린 가격을 시장이 좋지 않다고 내리면 미술계에 좋지 않은 신호를 주면서 해당 작가의 이미지에 타격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 작품 가격의 하향 조정은 하지 않는 게 미술계의 불문율이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