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4) 따뜻하고 재미있는 교회 오빠를 가족으로 주신 하나님

입력 2025-07-24 03:03
고정희(왼쪽) 선교사가 1994년 대전의 한 교회에서 당시 교회 오빠였던 이성로 선교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 선교사 제공

힘겹게 사시는 엄마에게 미안해 고등학교 3학년 시절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엄마는 갑자기 대학에 가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읽으셨다.

지방의 작은 대학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나의 비전이 시작됐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로의 부르심이었다. 대학 입학 후 CCC에 몸담으면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날마다 작은 방에 모여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다.

CCC가 1991년 충남 태안의 몽산포해수욕장에서 주최한 전국 여름 수련회는 내 삶의 분기점이었다. 드넓은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젊은 청년이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것을 부르짖었다. 회개가 일어났고 하나님을 향한 불일듯한 헌신이 일어났다.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헌신한 나는 하나님이 부르신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기도했다. 20살밖에 안 된 나이였지만 배우자를 위한 기도에도 열심을 냈다. 엄마는 내게 종종 수녀가 될 것을 이야기하셨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 부러웠다. 기도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배우자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배우자를 만나면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들어주신다면 나와는 다르게 밝고 재밌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남동생과 둘이 살면서 나는 자주 아팠다. 그날도 성경학교 강습회를 가야 하는데 아파서 못 가겠다고 전도사님께 연락했다. 군을 제대하고 복학을 기다리던 한 교회 오빠가 전도사님으로부터 집 주소를 알아낸 뒤 떡볶이와 어묵을 사서 병문안을 왔다. 그 오빠는 우리 집의 빈곤한 형편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 모습이 사랑스러웠다고 나중에 말해줬다. 처음 집에 들어선 오빠는 우리에게 “연탄가스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가스가 조금씩 새어 나와 몸이 좋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미처 몰랐다. 오빠가 사 온 간식을 먹고 기운을 차린 나는 함께 강습회에 갔다.

잠깐 슈퍼마켓에 들어간 교회 오빠는 당시 500원인 오렌지 주스를 사서 뚜껑을 열어주며 나에게 건넸다. 그 시절 오빠가 건넨 주스와 비슷한 것을 보면 그때가 떠오른다. 그런 친절을 받아 본 적이 없던 나는 그의 친절함에 울컥했다. 강습회 내내 오렌지 주스만 생각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큰 사건이 아닌 필요를 채우는 자상함이다. 같은 시간 교회 오빠는 ‘저 아이와 같이 살아야겠구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듯 하나님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교회 오빠를 나에게 가족으로 주셨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 이른 나이에 부부가 됐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3)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