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성인 남성 크기의 첨단 슈트를 개발해 착용하며 슈퍼 히어로로 활동한다. 자유자재로 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발차기 한 방에 자동차를 날려버리는 등의 괴력을 발휘한다. 현실에서도 이런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부분적으로 성과가 나오고 있다. 다만 안정성과 동력원 문제는 여전히 현대 과학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숙제다.
2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현재 기술력으로 제작 가능한 ‘현실판 아이언맨 슈트’는 기능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비행을 가능토록 하는 ‘제트팩’과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화외골격’이다.
제트팩은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개발된 개인형 비행장치다. 통상 비행기의 엔진에 해당하는 동력원과 출력을 담당하는 추진기로 구성된다. 제트팩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이 거대한 장비 없이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업계에서 가장 상용화에 가까운 제트팩을 개발 중인 영국 기업 ‘그래비티 인더스트리스’의 실험 영상을 보면, 양팔에 부착된 작은 대포 모양의 추진기와 등에 매단 책가방 사이즈의 동력원 외에는 별도 장비가 없다. 추진기가 팔에 부착돼 있기 때문에 방향 전환이나 이착륙도 어렵지 않다.
강화외골격은 보행과 물리력 지원을 담당한다. 팔이나 허리, 다리 등에 덧입는듯한 모습으로 착용하는 이 슈트형 장비는 기계 관절의 힘을 이용해 인간 이상의 힘을 내도록 보조한다. 슈트에 내장된 센서가 압력을 감지하면 모터·스프링 등이 힘을 더하는 방식이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인간의 10~20배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 관절에 부담 없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파른 계단이나 험준한 산지를 가볍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웨어러블 슈트의 가장 큰 효과가 기대되는 곳은 군사 분야다. 수색·수송·건설 등 각종 작전에 체력이 극심하게 많이 소모되고 중장비를 다룰 일이 잦은 군병력 특성상 강화외골격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국가가 적지 않다. 미국 통합특수전사령부는 ‘전술·작전 경작전복(TALOS)’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해당 프로젝트 수주를 노리는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이미 10여년 전에 90㎏의 군장을 짊어진 군인이 시속 16㎞로 지속 행군 가능한 형태의 강회외골격을 목표로 세웠다. 러시아는 ‘라트니크-3’라는 이름의 전투슈트 프로젝트를 특수부대와 공병·수송부대에 시범 적용 중이다.
상용화 현실성을 감안하면 실생활에서 더 빠른 시일 내에 볼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은 강화외골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프링이나 기계식 관절구조만으로 작업자를 보조하는 ‘패시브 외골격’의 경우 별도 동력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량생산과 저가 양산에 유리하다. 현재도 간단한 강화외골격은 수백만원 수준에서 판매되고 있다. 작업자의 부상 위험을 줄이고 1인당 생산성을 크게 올리는 만큼 군사적 목적이 아닌 산업계 수요도 강하다. 보건·의료 업계에서도 관절이 망가져 걷지 못하는 환자나 노인의 보행을 보조할 목적의 강화외골격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이언맨 슈트 같은 수준의 제트팩의 경우 사정이 좀 더 복잡하다. 우선 동력장치와 에너지원이 문제다. 영화 속 아이언맨은 손바닥만한 원자로인 ‘아크 리액터’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해 사실상 무한히 비행할 수 있지만, 현실에 이런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량화가 핵심인 제트팩 특성상 수소·휘발유·액화석유가스(LPG) 등 장시간 비행에 필요한 연료를 담기가 쉽지 않다. 상용화에 가장 근접했다는 그래비티 인더스트리스 제품 역시 최대 8분(약 5㎞)의 비행만 가능하다는 게 업계 평가다. 결국 현재 기술력으로는 지하철 세 정거장가량의 거리를 비행한 뒤 착륙해 다시 연료를 보급받고 이륙하는 식의 비효율적인 비행만 가능하다.
분단 국가라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도 제트팩 발전의 족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제트팩이 상용화된다고 해도 한국의 경우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사실상 비행이 불가능하다. 우선 잠실·수서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서울 대부분이 비행제한구역(R-75)으로 묶여 있다. 안국역~동작역을 남북 축으로 하는 원형 지역(동서로는 광흥창역~응봉역)은 비행금지구역(P-73A)이다. 고양시·파주시도 사실상 전체가 비행금지구역(P-518)이다. 비행제한구역의 경우 초경량 드론 등은 제한적으로 허용되지만 인간 파일럿이 조종하는 비행장치는 항공기로 분류돼 금지 대상에 오를 공산이 크다.
현 수준에서 제트팩 자체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고 사고 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다. 공중에서 홀로 활공하는 제트팩은 장비가 고장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항공기와 달리 소형 동력원과 추진기에 의존해 하늘에 떠 있는 상황에서 한쪽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추락 확률이 매우 높다. 도심에 떨어지면 건물이나 행인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고, 미소진 연료로 인한 폭발·화재 등 2차 피해도 우려된다. 사실상 작은 폭탄이 시내에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한 항공 업계 관계자는 “제트팩이 상용화되면 공중 추돌을 막기 위해 일일이 항로를 설정하고 관제 대상으로 모니터링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미래를 대비할 만한 체계나 관제 인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