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석유화학 업계가 정부에 전기요금 감면을 공식 요청하고 나섰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침체 등으로 실적 악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연간 수천억원에 이르는 전기요금 부담이 경영에 적잖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산업 간 형평성 등의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화학업계는 최근 전라남도와 함께 여수석유화학단지 입주사의 전기요금을 킬로와트시(kWh)당 182.7원에서 160~165원으로 2~5년간 감면해 달라고 국정기획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청했다. 지난해 인상폭(10.2%)만큼을 내려달라는 것이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있는 여수는 석화 업계 전반의 재무 악화로 지난 5월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으로 지정된 상태다.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와 원가 경쟁력 하락 등으로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수년째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케미칼(-8941억원), LG화학(-5632억원), 한화솔루션(-3002억원), 여천NCC(-1503억원)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 대부분이 적자를 보였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2023년 4분기부터 지난 1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이 잇달아 오르면서 전기요금 때문에 적자가 더 심해지거나 설령 이익이 나더라도 전기요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기업이 많아졌다”고 호소했다. 업계에서는 과잉공급을 빚고 있는 NCC(나프타분해설비) 등 설비를 감축하고 비핵심자산을 매각하는 등의 사업 재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전기요금 부담이 단기 유동성 악화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전라남도까지 나서서 정부에 전기요금 감면을 요청한 건 석유화학 산업이 전남 지역 제조업 생산액의 6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여수산단의 고용 인원은 전남 인구의 11% 이상이다.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울산과 충남 서산(대산)도 정부에 산업위기 선제 대응지역 지정과 지역 산단 내 전기요금 감면을 공식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인하하려면 사회적 논의·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소상공인의 공공요금을 지원하는 것처럼 석유화학 업계의 전기료 부담을 정부가 지원할 수는 있지만,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전력 부채가 205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석유화학 업계 전기요금을 감면할 경우 철강 등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