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에 내신 망치면 수능 올인… 검정고시 부추기는 입시제도

입력 2025-07-22 00:03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지난달 16일 인천 남동구교육청 상황실에서 2025학년도 제2회 초·중·고 졸업학력 검정고시 원서 접수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시스

학원에서 공부하려고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공교육은 사교육의 경쟁력에 압도당했다. 학생들은 교사보다 학원 강사 말에 더 귀 기울인다. 사교육에 밀린 교단은 ‘스승’의 지위를 잃고 있다. 자부심을 잃은 교사는 학교를 등진다. 이탈은 젊고 유능한 교사부터다. 학생 수 감소에 공교육 투자 축소 논의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끝낼 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정치권은 교육 문제에 손대봤자 표 떨어진다며 손사래치고 있고, 교육개혁을 책임질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 교육청은 따로 놀고 있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

공교육에서 벗어나는 게 ‘현명한 선택’

현행 대입 제도는 ‘자퇴→검정고시→수능 학원’이란 입시 트랙이 활성화되게끔 잘못 설계돼 있다. 입시 당국이 의도한 것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미래 인재 양성에 대한 비전이나 철학 없이 정치공학적으로 표를 계산하며 어정쩡하게 타협한 결과다.

현 대입 난맥상을 들여다보려면 2019년 이른바 ‘조국 사태’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들의 불공정 입시 의혹으로 학교생활기록부 위주인 수시 제도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문재인정부는 수능 위주인 정시 비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교육부는 2019년 11월 발표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서 서울의 주요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로 의무화하는 이른바 ‘40%룰’을 발표했다. 40%룰이 의무화한 시점은 2023학년도지만, 당시 교육부는 서울 주요 대학들을 재정 지원 등으로 압박해 실제로는 2022학년도(2021년 11월 수능)부터 적용토록 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20% 수준이었던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이 30%로 올랐고, 조국 사태를 거치며 40%까지 올라간 것이다. 수시에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 미충족과 합격자 연쇄 이동 등으로 정시로 모집인원이 이월하는데, 서울 주요 대학들은 5% 안팎이다. 서울 주요 대학들은 두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정시를 통해 뽑도록 강제한 것이다.

정시 비율 확대와 고교생 자퇴 증가는 맞물려 있다. 학교알리미 공시 기준으로 일반고 자퇴생은 2020년에는 9504명으로 1만명을 밑돌았다. 40%룰이 적용된 2021년에는 1만2798명으로 껑충 뛰었다. 이듬해 1만5520명, 2023년에는 1만7240명, 지난해 1만8498명으로 증가했다. 자퇴생이 4년 새 94.6% 증가한 것이다.


수시와 정시로 이원화된 대입 체제가 정시 비율 상승과 맞물려 자퇴를 부추기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내신 성적을 망친 학생은 ‘수능 올인’을 고민하게 된다. 과거 정시 비율이 낮았을 때는 어떻게든 학교에서 만회해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주요 대학이 입학생을 50% 가까이 수능으로 뽑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각종 수행평가와 비교과 활동 시간을 절약해 수능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상위권으로 갈수록 내신을 만회하기 어렵다. 전교석차 30등이 20등이 되는 것보다 5등에서 4등이 되는 게 어렵다. 일부 명문고를 제외하고 대다수 일반고는 수시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학교가 수능을 제대로 준비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충청 지역의 한 일반고 교사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좋은 결과를 얻도록 교육과정이 짜여 있다. 수능은 수시 최저기준을 충족할 정도가 수업 기준”이라고 말했다. 자퇴 후 검정고시 수능 학원에 들어가면 또래보다 수능을 2번 더 치를 수 있다는 것도 사교육의 홍보 포인트다.

‘내신 5등급제’ 릴레이 자퇴 기폭제 예고

올해 고1부터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내신 성적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축소됐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수업을 선택해 듣고 학점을 누적해 졸업하는 제도다. 학생들이 적성·진로에 따라 주도적으로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문제는 내신 변별력이 대폭 하락한 점이다. 기존 9등급제에선 1등급이 상위 4%, 2등급 11%, 3등급 23%였다. 바뀐 5등급제는 1등급 10%, 2등급 34%, 3등급 66%다.

상위권에선 2등급으로 밀리면 타격이 크다. 한 과목이라도 10% 밖이 되면 9등급 기준으로 4등급 취급을 받게 된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가 좁아진 것이다. 상위권 학생일수록 40%룰이란 우회로가 있는 상태에서 공교육에 남아 있을 이유가 더 적어진 셈이다.

이처럼 자퇴를 부추기는 입시제도는 지난 정부들의 합작품이다. 문재인정부는 교육공약 1호로 고교학점제를 추진했다. 이를 위해 고교 교육과정을 선택형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 와중에 조국 사태가 터지자 여론 무마용으로 정시 확대를 추진했다.

당시 교육부가 고교학점제와 호환되지 않는다며 강력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정시 확대와 고교학점제란 양립하기 어려운 제도를 동시에 추진해놓고는 핵심인 고교 내신 산출 방식과 고교학점제용 대입 제도를 차기 정부로 미루고 퇴장했다.

윤석열정부는 여론 눈치를 살피며 수시·정시 비율에 손대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능을 섣불리 건드렸다가 역풍이 불까 우려가 컸다”고 말했다. 내신은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9등급과 5등급, 1학년과 2·3학년 분리 방안 등을 오가다 5등급 상대평가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고 덮었다. 그 결과 부담은 결국 힘없는 학생 몫이 됐고, 공교육을 외면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한 입시 전문가는 “현행 망가진 입시 제도는 정치인과 교육 관료들의 무책임 때문”이라며 “어디서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입시 제도가 누더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