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사역하는 한모(47) 선교사는 2023년 어느 날, 한국으로 파송한 필리핀인 청년 선교사 A씨와 화상통화를 하던 중 이상한 사진 한 장을 보게 됐다. 오늘 이 행사에 다녀왔다며 그가 보여준 사진은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주요 포교 행사인 ‘10만 수료식’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 선교사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필리핀에서 어려운 가운데 훈련받고 한국까지 파송된 청년 사역자들에게 신천지가 접근하고 있었다니 오랫동안 헌신했던 시간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고 토로했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신천지가 한국으로 파송된 외국인 선교사를 포섭해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포교에 나서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선교지에서 애써 양육한 현지인 사역자들과 국내 주요 선교 대상인 이주민 등이 이단에 미혹되지 않도록 한국교회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 선교사에 따르면 A씨를 신천지로 끌어들인 건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인 B씨였다. 그간 후원회 형식으로 필리핀인들을 도왔던 B씨에게 A씨를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B씨는 5년 전 한 선교사가 한국의 필리핀인 교회로 파송한 필리핀인 부부 목회자도 포섭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신천지에 빠진 사실을 부인하며 역으로 한 선교사가 필리핀인 교회를 파괴하려 한다며 반박했다. 한 선교사는 “비자 연장을 거부한 끝에 이들 부부를 필리핀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다”며 “제자와 다름없던 그들을 최근 교단에서 제명하기까지 몸과 마음이 너무 상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단으로 인한 해외 선교지에서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와 해외 선교지 간 정보 공유가 유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용식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장은 “해외에서는 한국발 이단들이 어떤 수법으로 사람을 미혹하는지, 어떤 단체가 이단과 연관돼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선교사들이 먼저 이단 단체 정보와 포교 수법을 공부한 뒤 현지인들에게 예방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는 해외 선교지를 위협하는 이단에 대처하고자 최근 ‘선교지 이단대책실행위원회’를 발족하고 선교지에서 이단 대책 세미나 등을 개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현대종교는 주요 이단 정보를 영어와 중국어 등으로 번역한 책 ‘이단바로알기’를 전자책으로 제작해 선교사들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교회 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이단 정보를 공유하며 연대하고 대처할 필요도 있다. 탁지일 현대종교 이사장은 “선교사들이 이단 문제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어떤 곳에 도움을 요청하면 좋을지에 관한 정보를 담은 이단 대처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며 “한국 교단과 교회를 각 지역 선교사들과 연결짓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수시로 소통하며 이단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