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1인자 자리를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장 앞서고 성공하며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우리 본성이다. 자신의 욕심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일은 본능에 반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우리는 2인자 되기도 어려워한다. 사실 2인자도 대단한 것인데 말이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삿 4:8) 사사 시대 장군 바락이 여선지자 드보라에게 한 말이다. 드보라를 통해 “가서 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음에도 혼자서는 나아갈 수 없다는 바락의 고백이다. 이것은 바락의 불신 혹은 불순종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히브리서 11장은 드보라가 아닌 바락을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한다.
이는 단순히 전쟁의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바락의 마음을 보셨다. 그는 스불론과 납달리의 군사 1만명을 일으킬 수 있는 대단한 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비결이 자신이 1인자가 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과 동행하는 데 있다고 믿었다. 다시 말해 바락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2인자의 자리를 선택했다.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가장의 몫이라 굳게 믿는 한 성도가 있었다. 그는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고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며 살았다. 개원의로 성공하기도 했지만 그에겐 깊은 고정관념이 있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면 힘들게 산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딸이 좋은 대학을 가기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기도했다. 가사로 수고하는 아내도 ‘나보다는 덜 힘들다’는 마음으로 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불편한 몸으로도 여전히 가장 역할을 하느라고 분주했던 어느 가족 여행에서 자녀들이 그에게 말했다. “아빠는 이제 우리 좀 그만 챙기고 돌봄을 받으세요.” 순간 그는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2인자가 돼야 한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이 여호와의 음성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1인자로 살려고 애쓰는 동안 정작 가족이 원하는 것은 앞서가는 리더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였다는 것을. 그는 그동안 아내와 자녀들에게 무의식중에 휘둘렀던 권위, 자기가 이룬 것이라 여겼던 성취, 그것을 붙들고자 한 과도한 수고, 이 모두가 헛됨을 인정하며 회개했다.
파킨슨병에 매인 지금 그는 2인자로 살아간다. 가정에서 결정할 일이 있을 때 가족의 의견을 묻는다. 병원에서도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인정하며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만한 자아를 꺾기 위해 병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니 자신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은 아내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아침밥을 차리는 적용도 한다. 그 결과 큰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있다.
드보라의 동행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는 바락의 연약한 모습은 오히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존중하는 순종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여성 지도자의 존재 자체가 드문 시대였다. 하지만 바락은 드보라의 영적 리더십을 인정하고 따랐다.
드보라 또한 바락을 세워갔다. 사사이자 선지자로서 모든 권위를 가졌지만 드보라는 군대를 모으고 지휘하며 전투하는 모든 과정을 바락에게 맡긴다. 그렇게 이스라엘 군대도 세워졌다. 공동체를 위한 사명을 감당하며 ‘랍비돗의 아내’ 자리를 지키니 80년 평화기를 지나며 게으르고 약해진 남자들이 살아나고 가정도 회복되었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드보라 아닌 바락을 기록했을까. 그것은 당시 여자 사사를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이었는지를 하나님이 알아주셨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바락의 이 헌신을 다 보시고 아시고 그를 높이신 것이다.
월등한 1인자 홀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 가정 교회 나라가 다 그렇다. 바락처럼 영광보다 동행을 택하는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한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