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출산 가로막는 벽, 사교육을 넘자

입력 2025-07-22 00:33 수정 2025-07-22 00:33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한국의 ‘학원(Hagwon)’ 문화를 소개했다. 영어로 번역되지 않는 ‘Hagwon’은 한국 사회의 경쟁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좋은 대학이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학원은 생존 경쟁의 출발점이 된다. 이 구조는 과잉 사교육을 낳고, 가계 부담과 교육 양극화로 이어지며, 아이를 낳기 두려운 사회를 만든다.

지난해 초중고생 사교육비는 연 29조원이다. 10명 중 8명이 학원에 다니며, 학생 1인당 월 47만원이 넘는다. 월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는 평균 67만원을 쓰지만, 300만원 미만 가구는 20만원대에 그친다. 교육기회는 소득에 따라 나뉘고, 격차는 자녀수 결정에도 영향을 준다. 최근에는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한 연구는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1% 증가할 때 이듬해 합계출산율이 최대 0.26% 포인트 감소한다고 경고했다.

사교육 문제는 비단 교육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 양육, 나아가 국가 존속의 문제다. 저출생 해소를 위해서라도 사교육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선결 과제다. 이는 공교육을 강화하는 것부터 산업구조 개선까지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걸음은 공교육의 사교육 흡수다. 부모들은 공교육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사교육을 선택한다. 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 돌봄 필요로 인한 사교육은 유보통합, 초등돌봄, 방과후학교 등으로 해소하고, 중·고교부터 본격화되는 입시수요는 자기주도 학습지원으로 대응해야 한다. 학습 콘텐츠와 대학생 멘토가 함께하는 자기주도학습센터 같은 공공 기반과 서울시 ‘서울런’처럼 온라인 학습지원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교육의 방향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초저출생과 AI 시대의 도래로 창의성과 협업, 자기주도성 등 필요한 인재상이 달라졌다. 현재의 문제풀이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정서·신체·인지의 균형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먼저 미래 인재를 어떻게 키우고 어떤 방식으로 선발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 스스로 적성과 흥미에 따라 교육을 선택할 수 있게 권한을 강화하고, 영유아와 초등 저학년 학생에게는 체육수업 확대 등을 통해 정서와 신체의 고른 성장을 위한 교육을 펼쳐야 한다. 특히 ‘4세 고시’같이 지나친 조기 사교육은 특정 연령대의 과도한 선행교육과 레벨테스트를 규제하는 등 적극 대응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사교육을 불러오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과도한 사교육은 양질의 일자리로 향하는 경쟁구조에서 비롯된다. 저출생 대응의 마지막 골든타임에 선 지금이 사교육 문제에 대한 논의와 대안 마련을 본격화할 타이밍이다. 사교육 문제를 외면한 채 출산율 반등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가정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