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 걱정만 하지 말고 ‘프렙’하세요

입력 2025-07-22 02:03
게티이미지뱅크

예방 약제 복용으로 신규 감염 차단
올해부터 전국으로 사업 확대
남성간 성접촉자·유흥업 종사자 등도 대상
국내서 젊은층·외국인 감염 증가세

보건당국이 올해부터 17개 시·도로 확대한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 전 노출 예방 요법, 이른바 ‘프렙(PrEP)’ 지원 사업의 참여가 조금씩 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HIV 감염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여전해 올해 지원 목표인 700명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2년간 국내 HIV 신규 감염은 다소 줄어드는 추세지만 20~40대 젊은 층과 외국인 감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HIV 신규 감염을 줄이려면 이들 HIV 취약군 대상으로 프렙을 적극 알리고 참여를 독려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프렙 지원 신청 증가 ‘탄력’

프렙은 HIV 비감염자에게 ‘예방 약제(트루바다)’를 복용토록 해 추가 감염을 막는 방법이다. 이미 미국 대만 등 많은 국가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해 신규 감염 차단 효과가 입증됐다. 2019년부터 국내에서도 예방약 처방에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HIV 감염인의 성 파트너 비감염자에게만 한정돼 보급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질병청은 프렙 대상을 기존 HIV 감염인의 파트너뿐만 아니라 ‘남성과 성접촉하는 남성(MSM) 또는 트렌스젠더 여성, 유흥업 종사자 등 고위험 직업군’으로 넓혀 지난해 11~12월 대도시 2곳에서 프렙 지원 시범사업을 벌였다.

사업은 건강보험이 아니라 질병청의 자체 예산으로 진행됐다. 참여자는 약값 월 6만원만 내고 HIV 선별 검사, 처방 전 검사에 드는 본인 부담금은 일체 정부가 지원한다. 기존엔 프렙 처방에 월 40만원이 들었다. 시범사업 참여자는 30여명에 그쳤다. 이에 정부는 올해 1월부터 프렙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21일 질병청에 따르면 지난 1~5월 프렙 지원은 총 231건으로 집계됐다. 1월 19건, 2월 29건, 3월 58건, 4월 60건, 5월 65건이었다. 다만 정확한 지원자 수는 취합되지 않았다. 질병청 관계자는 “현재는 보건소에서 신청과 지원을 수기로 진행하고 있어 집계에 시간이 걸린다”면서 “조만간 프렙 지원 통합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면 인원 파악이 빨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3월부터 프렙 지원 신청이 생각보다 많이 늘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했다. 순천향대서울병원 감염내과 백예지 교수도 “프렙 확대 전에 비해 처방이 배 가량은 많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질병청은 올해 프렙 지원 목표로 700명을 잡고 있으며 이후 확산을 통해 중장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2023년 대비 HIV 신규 감염을 30~40%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HIV 감염 확인 위한 혈액 검사 모습. 정부가 올해부터 HIV 노출 전 예방 요법인 ‘프렙’ 지원 사업을 17개 시·도로 확대하면서 참여가 조금씩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티이미지뱅크

프렙 제외 ‘미등록 외국인’ 관리 필요

최근 공개된 질병청의 2024년 HIV·에이즈 신고 현황을 보면 지난해에 975명의 HIV 신규 감염이 발생해 2023년(1005명) 보다 30명 줄었다. 연령별로 보면 30대가 36.9%로 가장 많았고 20대(29.8%) 40대(13.7%) 순으로 20~40대가 전체의 80.4%를 차지했다. 해당 연령대는 전년도(79.7%)와 비교해 비율이 소폭 올랐다. 질병청 관계자는 “젊은 층 신규 감염자 증가세는 전세계적 추세이며 해당 연령대에서 안전한 성교육 강화와 함께 프렙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관련 민간 단체 등과 다양한 홍보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감염자에 대한 지속적인 예방 관리도 필요하다. 지난해 신규 감염자 중 내국인은 감소 추세이나 외국인은 261명(26.8%)으로 전년(256명, 25.5%) 대비 증가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종료 이후 해외 교류가 늘고 외국인 국내 취업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최재필 과장은 “특히 프렙 지원 대상이 아닌 ‘미등록 외국인들’이 검사와 치료의 사각 지대에 놓여있다”면서 “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도록 적극적인 방안이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등록 외국인의 경우 프렙 예방약을 공급하는 제약사와 민간 의료단체에서 일부 지원하고 있으나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지난달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새로운 프렙용 주사약의 신속한 국내 도입도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즈투고(레나카파비르)’로 명명된 이 약제는 기존 하루 한 알씩 복용하는 트루바다와 달리 6개월 마다 한 번씩 연간 2회 주사 맞는 형태로, 임상시험에서 99% 감염 예방 효과가 입증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해당 주사제를 프렙용으로 권고하는 새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새로운 예방약의 조기 사용을 위해 국내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 HIV 신규 감염을 줄이기 위한 또 하나의 무기를 갖게 되는 것”이라며 “다만 비용 효과성이 충분히 입증돼야 하고 주사제에 대한 거부감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순천향대서울병원 백예지 교수가 지난해 하반기 진행한 질병청의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HIV 고위험군인 국내 남성간 성접촉자(MSM) 중 실제 프렙이 필요한 상위 취약군 규모는 최소 4만1300명에서 최대 7만4500명으로 추계됐다. 또 다른 모델(MPOX 모델)에선 상위 취약군이 1만3000명으로 추산됐다. 백 교수는 “성접촉 남성이나 유흥업소 종사자 등 접근이 어려워서 여러 모델링을 활용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추계치가 여러 가지로 나와 현재 타당성 검증 연구를 추가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