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AI, 그 다음은?

입력 2025-07-22 00:38

2020년 ‘알파폴드(AlphaFold)2 쇼크’가 전 세계 과학계를 흔들었다. 알파폴드는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AI 프로그램이다. 복잡다단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특화돼 있다. 알파폴드2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10년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박테리아 단백질 구조를 단숨에 알아냈다. 고작 30분 만에.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SARS-CoV-2)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바탕으로 단백질 구조를 알아내기도 했다.

단백질 구조, 특히 단백질 접힘(폴딩)을 예측하는 건 유전체에 새겨진 ‘암호문’을 해독하고 적용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인체는 2만~2만5000개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 유전자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단백질 암호 유전자’다. 단백질은 인체를 구성하고 기능을 조절한다. 질병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긴 사슬처럼 연결되고, 이 사슬이 꼬이고 접히는 3차원 구조를 띤다. 어떻게 접히느냐에 따라 같은 아미노산 서열을 지닌 단백질이라도 다른 기능을 가진다.

단백질 3차원 구조 규명은 신약 개발, 질병 예방 등에 있어 ‘주춧돌’이다. 하지만 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수십년이 걸리는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걸 알파폴드는 순식간에 해냈다. 이런 성과로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와 존 점퍼 딥마인드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당시 노벨상위원회는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50년 묵은 꿈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50년 묵은 꿈을 이뤄낸 AI는 광범위한 분야에서 엄청난 힘을 자랑하고 있다. 산업과 경제, 과학기술의 판도를 바꿀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AI라는 플랫폼 위에서 빠르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건 ‘생명과학 산업’일 확률이 높다. 디지털과 생명과학이 만나는, AI와 생명공학이 결합하는 ‘바이오 테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중심축으로 바이오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DARPA는 바이오 스피어(감염병 위협 대응을 위한 바이오 경고·방어 시스템), 판다 프로젝트(AI를 활용한 유전자 기반 병원체 탐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바이오 테크 육성에 전력투구 중이다. 10년 전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난해에만 300억 위안(5조8000억원)을 투입했다. 중국의 ‘바이오 굴기’가 거세지자 미국이 생물보안법 추진으로 본격적인 견제를 예고할 정도다.

하지만 한국은 어정쩡한 자리에 서 있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가 지난달 발표한 ‘핵심·신흥기술지수’를 보면 바이오 분야에서 한국은 25개 조사 대상국 중 10위에 그쳤다. 압도적 선두인 미국과 중국에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일본 영국 독일 인도 호주 캐나다 등에도 뒤졌다. 선도자(퍼스트 무버)는커녕 추격자(패스트 팔로워) 노릇도 숨이 찰 지경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안정적이고 위험도가 낮은 연구·개발(R&D)에 매달리고, 수많은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구문화가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의대나 해외로의 두뇌 유출. 35년 전 생화학과에 함께 입학했던 과 동기 40명 가운데 4분의 1가량만 과학자의 길을 걷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기회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다. 알파폴드는 AI를 활용한 퀀텀 점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퀀텀 점프의 구름판은 DARPA 같은 국가 주도 R&D 기관이어야 한다. 자유롭게 연구하고 고위험과 실패를 감내하는 연구문화는 도움닫기가 될 것이다. 지금처럼 안정적·저위험 R&D에만 힘을 쏟아서는 AI 다음에 찾아올 바이오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김찬희 편집국 부국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