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기업의 성장 사다리 복원해야

입력 2025-07-22 00:35

한때 역동성의 상징이었던 한국 경제는 1%대 성장이 뉴노멀이 됐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GDP를 밑도는 현상이 2020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일본 등 해외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피크 코리아’가 새삼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러한 상황의 이면에는 우리 경제의 허리인 중소·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중하위권 대기업이 제2의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성장 사다리’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의 성장회계에서 경제 성장을 결정하는 자본, 노동, 생산성이라는 3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견인하는 기업이 성장을 꺼리는 ‘피터팬 증후군’에 갇혀 버렸기 때문이다.

중소가 중견으로, 중견이 대기업으로 진입하면 세제 등 수많은 혜택이 줄어든다. 간단한 예를 들면 중소기업은 일반 연구·개발(R&D)에 대해 2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받지만 중견기업이 되면 8%, 대기업은 0~2%로 크게 축소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R&D 조세지원율이 기업 규모별로 차등이 없거나 있다 해도 차이가 우리처럼 크지 않다.

반면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적용받는 규제는 급증한다. 중소기업이 자산 5000억원 이상 중견기업이 되면 126개의 규제가 추가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성장하면 65개의 신규 규제가 추가되고, 자산이 GDP의 0.5%인 약 10조원이 되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분류돼 순환출자 금지, 상호출자 제한, 채무보증 금지 등 68개의 강력한 규제가 더 생긴다. 기업 성장을 위한 인수·합병(M&A)과 벤처 투자의 길도 좁기는 마찬가지다.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고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는 자회사 지분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 이상 보유하도록 강제해 외부 기업과 소규모 지분 투자를 통한 합작이나 사업 확장을 어렵게 만든다. 대기업의 혁신 DNA를 스타트업에 이식하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할 통로인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역시 각종 규제에 묶여 있다. 외부 자금 조달을 40%로 제한하고, 해외 투자 한도를 20%로 막아놓은 규제는 글로벌 CVC와 경쟁해야 하는 우리 기업에는 족쇄나 다름없다.

우리 경제가 다시금 활력을 찾기 위한 해법은 명확하다. 부러진 성장 사다리를 복원해 기업이 성장의 과실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선 중소기업이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하더라도 R&D, 시설투자, 고용 등에 대한 각종 혜택이 급격히 축소되지 않도록 공제율 등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는 스무딩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업이 예측 가능성을 가지고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기업의 사업 재편과 신사업 진출을 가로막는 규제도 과감히 혁파해야 한다. 지주회사가 미래 사업 재편 등을 목적으로 지분 투자를 할 경우 지분율 규제의 예외를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또한 CVC의 외부 자금 및 해외 투자 한도를 완화해 국내 벤처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 기업이 글로벌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그룹별로 순환출자가 상당 부분 해소됐고, 지주회사 체제로 지분 구조도 단순화된 만큼 현행 지분·출자 규제 등 대기업에 대한 사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아차하면 추락하는’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기업이 성장해 투자와 고용을 늘려야만 위기의 한국 경제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법령 하나, 제도 하나를 만들 때 신중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