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조종사가 손상 덜한 엔진 끈 정황

입력 2025-07-21 00:30 수정 2025-07-21 08:54
제주항공 사고기 엔진.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 당시 조종사가 조류와 충돌해 심각한 손상을 입은 엔진이 아닌 상대적으로 손상이 덜한 반대편 엔진을 정지시킨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과 제주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은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몰아가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0일 국토부 사조위 등에 따르면 사조위는 전날 이런 내용을 포함한 엔진 정밀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유족 협의회 반발로 공개가 무기한 연기됐다. 사조위는 지난 5~6월 사고기 양쪽 엔진을 프랑스 파리로 옮겨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연방항공청(FAA), 보잉 등과 함께 정밀조사를 진행했다.

유족 협의회에 사전 공유된 조사 결과에는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손상된 오른쪽 엔진이 아닌 왼쪽 엔진을 정지시키면서 양쪽 엔진 모두 출력을 상실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엔진과 연결된 엔진전력장치(IDG)도 작동을 멈춰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 등 블랙박스 전원, 랜딩기어(이착륙 장치) 작동이 차단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유족 협의회는 이에 대해 “죽은 새와 조종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유족 측 법률 대리인인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엔진 정밀 검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서도 ‘현재까지의 결과’라는 단서를 반복하는 등 사조위 발표는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김유진 유족 협의회 대표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 채 결과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에 대한 근거는 밝히지 않겠다는 태도로는 독립성과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제주항공 조종사노동조합도 성명을 내고 “사조위의 일방적인 발표와 이를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에 강력히 분노한다”며 “조종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악의적 프레임 씌우기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사조위가 국토부 산하 조직이라 방위각 시설 둔덕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경고 조치를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조위는 유족 측 의견을 고려해 발표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유족 측과의 협의를 거쳐 향후 조사 결과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협의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사조위가 국토부 산하 기관이라는 점에서 조사 과정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최종 조사 결과 보고서는 내년 6월쯤 발표될 전망이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