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으로 병원을 나간 사직 전공의들이 정부에 복귀 조건을 내걸었다. 전공의들이 참여하는 의·정 협의체 설치 등이다. 전공의들은 9월 하반기 모집을 통해 병원으로 복귀해 수련을 재개한 뒤 정부와의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의대생에 이어 사직 전공의들도 복귀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 절차가 마무리되면 의·정 대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정부에 요구하는 3가지 사항을 의결했다. 이들은 최우선 사항으로 ‘윤석열정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재검토를 위한 현장 전문가(의사) 중심의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다. 또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수련 연속성 보장’과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 기구 설치’도 제시했다. 이번 요구안은 수련병원 138곳 중 124곳(89.9%)의 찬성표를 얻었다.
대전협은 9월 시작되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을 복귀 시점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2년 이상 수련이 단절되고 전문의 자격 취득이 늦어지는 데 대한 부담 여론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견이 큰 의료개혁 과제를 단기간에 매듭짓기 어려운 만큼 복귀부터 하고 새 논의 기구에서 협상을 이어가려는 것으로 읽힌다.
전공의 요구 가운데 ‘수련 연속성 보장’은 논란이 일 전망이다. 의료계에선 사직 전공의들에게 ‘입대 연기’와 ‘기존 수련병원 복귀’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반기에 복귀하면 수련 도중에 입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정 사태로 발생한 군 미필 사직 전공의는 약 3300명이다.
이 중 지난 4월 880명이 입대했고, 나머지도 내년부터 3~4년에 걸쳐 이뤄질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전원 복귀를 위해 입대 연기를 결정하면 당장 내년부터 군의관·공보의 배치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복지부는 전공의 복귀 등 의·정 갈등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의료 갈등 정상화를 짚고 “(수련협의체를 만들어) 전공의들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고 질적으로 제대로 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전공의 복귀가 순탄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부 병원에선 의·정 사태를 거치며 ‘전공의 없는 병원’에 적응했다는 반응도 있다. 교수와 전공의 사이의 불화가 커진 탓에 모집·선발 인원 자체가 적을 수도 있다. 전공의 모집은 병원장 권한이지만 각 과에서 모집 인원을 정하고 최종 선발까지 결정하는 구조다.
서울 주요 수련병원 한 교수는 “이미 PA간호사를 정규직 채용하는 등 (병원은) 전공의 없이 돌아가는 상태”라며 “자발적으로 사직하고 퇴직금까지 수령한 전공의들을 원상 복구시켜 달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