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변증과 간암의 주요 원인인 B·C형 간염은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환임에도 국내 많은 환자들이 조기에 진단받지 못하거나 적절한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C형 간염은 2016년 바이러스 박멸이 가능한 치료약이 등장해 진단만 되면 완치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됐다. B형 간염 또한 예방 백신과 바이러스 억제 치료제가 나와 있어 감염을 막고 병의 조절이 충분히 가능하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까지 글로벌 간염 퇴치를 목표로 각국에 정책적 대응 강화를 주문했다. 한국은 2023년에서야 ‘제1차 바이러스 간염 관리 기본계획(2023~2027년)’을 수립했다. C형 간염 국가건강검진은 2016년 타당성 검증을 시작한 후 9년만인 올해에서야 56세에 한해 항체검사 시행에 들어갔다. 일찍부터 선도적 대응에 나선 일본 호주 미국 대만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정책 측면에서 상당히 뒤처졌다.
2021년 공개된 ‘고소득 국가 대상 C형 간염 퇴치 가능 시점 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2017년 분석에선 2030년까지 C형 간염 퇴치가 가능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2019년 분석에선 2034년으로 퇴치 시기가 늦춰질 것으로 예상됐다. 주 원인으로 C형 간염 치료율 감소와 환자 조기 발견을 위한 진단 검사 부족이 꼽혔다. 반면 일본(2027년) 이탈리아(2029년) 등 11개국은 WHO 목표대로 2030년 내에 퇴치가 예측됐다.
21일 대한간학회에 따르면 한국인의 C형 간염 확진자(RNA 양성자)는 약 10만명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치료율이 56.8% 정도여서 미치료자가 2만7000여명으로 추정됐다(2017~2023년). 간학회 의료정책위원인 장은선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국가건강검진의 56세 제한적 시행과 선별 검사 후 확진 검사까지는 비용이 지원되지만 이후 치료 연계 시스템이나 지원이 없어 치료율 향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치료 상태에서 감염원으로 잔존해도 이후 절차가 제도화돼 있지 않은 것도 개선점으로 거론됐다. 교정시설이나 중독치료센터 수용자, 북한이탈주민 등 간염 발생 위험과 전파 가능성이 높은 특수집단에 대한 집중 보건체계가 미비한 점도 개선돼야 한다. 장 교수는 “C형 간염 퇴치를 위해선 더 광범위한 연령대를 포함하는 포괄적 선별검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B형 간염은 1995년 국가예방접종 도입 후 환자수는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지만 예방접종 미실시 연령대인 40~60대의 유병률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B형 간염 보유자는 129만명에 달하는데, 치료율이 22.7%에 그쳐 미치료자가 100만명 가량으로 추산됐다(2022년 기준).
B형 간염은 치료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 개선이 절실하다. 현재는 간효소(ALT) 수치가 정상 상한치의 배 이상 올라야 급여가 인정된다. 하지만 64%의 간암이 현행 B형 간염 급여 기준 밖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김인희 전북대병원 교수는 “간수치와 무관하게 혈액 내 바이러스 농도를 기반으로 건보 기준을 단순화하면 치료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