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잔잔한 감성의 일본 영화들이 스크린에 오른다. 소마이 신지 감독의 복원작 ‘이사’를 시작으로, 기무라 타쿠야, 히로세 스즈 등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 신작들이 한국 관객을 기다린다.
23일 개봉하는 ‘이사’는 1980~1990년대 일본 뉴웨이브를 대표한 소마이 감독의 대표작이다. 촬영감독 쿠리타 도요미치가 2023년 4K로 복원했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이혼 선언을 마주한 초등학교 6학년 소녀 렌코의 내면을 세밀하게 그린다.
소마이 감독은 청소년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연출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영화가 개봉하던 1993년 “어른들의 문제에 휘말린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을 치유해 나갈 수 있는가 (고민했다)”며 “영화는 렌코가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고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여정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소마이 감독 특유의 연출 문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직접적인 대사보다 간접적 방식으로 10대 주인공의 감정 곡선을 잡아낸다.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며 조용히 따라가는 롱테이크 기법으로 대사 없이도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식이다. 걷고 멈추는 인물의 움직임만으로 불안과 고립, 슬픔 등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특히 주인공이 예기치 못한 불행을 겪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불’은 상징적 이미지다. 알코올램프의 불, 축제의 불꽃, 환상 속 바다 위에 타오르는 불은 감정의 폭발과 혼란, 성장의 고통을 시각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불을 활용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는 작품에 환상적 분위기를 더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작품을 관람한 뒤 “소마이 신지가 그 세대 최고의 감독임을 확신했고, 그 순간부터 그는 내가 넘어서고 싶었던 단 하나의 감독이 되었다”고 극찬했다. 이 영화는 4K 복원 이후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 클래식 부문에 초청돼 최우수 복원 영화상을 받았다. 30년의 세월을 초월한 걸작임을 입증한 셈이다.
오는 30일 한국 관객들과 만나는 ‘엣 더 벤치’(포스터)는 ‘초속 5센티미터’ 실사판으로 주목받은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히로세 스즈, 나카노 타이가 등 일본의 인기 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는 강가의 작은 벤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의 소소한 일상을 조용하게 그린다. 개봉 직후 일본의 최대 콘텐츠 리뷰 사이트 ‘필마크스’(Filmarks)에서 평점 4.2점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8월 개봉을 앞둔 ‘그랑 메종 파리’(포스터)는 일본 유명 배우 기무라 타쿠야와 한국 배우 옥택연이 함께 출연한 화제작이다. 미슐랭 3스타를 목표로 고군분투하는 요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 인기 드라마 ‘그랑 메종 도쿄’의 후속작으로, 일본 개봉 당시 첫 주에만 9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프랑스 현지 촬영과 아시아인 최초 미슐랭 셰프 자문을 통해 현실감을 높였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