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그동안 가려져 있었던 국회의원의 보좌관 갑질 피해 제보와 사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원이 보좌진 인사권을 가지고 있어 피해를 외부에 쉽게 발설하지 못하다 보니 그간 ‘의원님 갑질’은 소문만 무성했다. 보좌진들은 국회의원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 정당의 보좌진협의회장을 지낸 A씨는 20일 국민일보에 “보좌진협의회에 들어오는 신고 내역엔 자취방 빨래를 부탁한다거나 자전거를 가져다 달라는 등 지극히 사적인 일을 지시한다는 신고와 상담 사례가 너무 많다”고 털어놨다. A씨는 “과거에는 ‘의원 집에 가서 강아지 오줌을 누게 하라’ ‘의원의 별장에 가서 잔디를 깎아라’ 등 황당한 사례가 많았다”며 “직접적인 욕설과 폭언 등 인격적 모욕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보좌진 B씨는 과거 미혼이었던 모 의원이 ‘자신은 집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며 “아침마다 의원실에서 쌀밥을 짓게 했다. 의원실 복도에 아침마다 갓 지은 밥 냄새가 진동했다”고 말했다.
국회 직원 인증을 받아야 쓸 수 있는 SNS 익명 게시판에는 최근 “수행비서관은 의원 배우자와 자녀를 케어하고, 주말엔 의원과 함께 골프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의원 집안 경조사에 보좌직원이 동원돼 때로는 혼주 측이, 때로는 상주 측이 되어 실무를 맡는다. 가족 휴가지 예약과 교통편 준비는 이제 사적 업무 영역으로 취급되지도 않는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의원 갑질의 경우 특정 의원실에서 반복된다는 게 특징이다. 문제가 있는 의원은 그대로 있고, 갑질을 못 버틴 보좌진만 계속 바뀌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에 따르면 강 후보자의 의원실 역시 꾸준히 갑질 문제가 거론되던 대표적인 의원실 중 하나다.
보좌진 사이에서는 이런 의원실을 일종의 ‘블랙리스트’처럼 인식한다. 전직 보좌진협의회장 C씨는 “모집 공고가 오래 떠 있거나 자주 모집 공고가 올라오는 의원실이 소위 블랙리스트 의원실”이라며 “그런 곳에서 1년 버텼다고 하면 다른 의원실로 옮길 때 따로 물어보는 게 없을 정도로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궂은일도 잘 참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최근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가다. C씨는 “국회 특성상 인사권이 의원에게 달려 있는데, 의원을 신고하는 순간 소문이 다 퍼져 사실상 이 업계를 떠나겠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신고하더라도 제보자 특정, 2차 가해 같은 우려 때문에 외부 대응도 쉽지 않다.
국회 보좌진 사이에서는 이번 기회에 국회의원의 갑질을 근절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보좌진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의원 권한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갑질 관련 신고나 상담 내역을 공천 심사에 반영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보좌진은 “보좌진의 의원 평가를 공천 심사에 반영하면 의원들이 알아서 조심할 것”이라며 “반복적으로 갑질을 일삼는 의원을 자연스럽게 걸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독립 기구인 ‘보좌진 고충조사단’(가칭) 신설 필요성 등이 아이디어로 거론된다. 제보자의 신원을 철저히 보호하고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한웅희 김판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