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사이 서울에도 폭우가 쏟아지면서 침수 취약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지난 2022년 수도권의 기록적인 폭우 이후 물막이판 등이 일부 개선됐으나, 노후된 시설은 여전히 취약 계층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장마철이 끝나도 집중호우는 언제든 내릴 수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20일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서 만난 김모(60)씨는 세간살이를 담은 큰 배낭을 매고 있었다. 김씨는 “주말에 쪽방 화장실에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비가 너무 많이 샜다”며 “다른 방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의 지붕은 대부분 낡은 슬레이트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 주민 한모(77)씨는 “슬레이트 지붕이 낡고 파손된 부분이 많아 비가 새는 일이 부지기수”라며 “배수가 잘 된다 해도 물 새는 건 막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슬레이트 지붕 위에 에어콘 실외기를 설치한 집도 10여곳이 넘었다.
집 구조 자체가 문제인 경우도 있었다. 김모(82)씨가 사는 쪽방 입구에는 빗물 배수관이 설치돼 있었다. 이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배수관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몇년 전 비가 크게 왔을 때 방에 물이 차서 살림살이를 버렸는데, 주말에도 물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2022년 8월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골목에는 물막이판이 상당수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었다. 70대 진모씨는 “3년 전 물난리 이후 빗물 역류가 어느 정도 대비가 돼서 올해 큰 피해를 보진 않았다”면서도 “올 여름이 지나기까지 불안함을 놓을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는 고무판으로 빗물받이를 막아서 위험해보이는 곳도 있었다. 30대 주민 이모씨는 “담배꽁초 등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고 악취까지 올라와 막아둔 것”이라며 “반지하 뿐 아니라 2~3층까지도 하수구 냄새가 올라온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는 배수로 청소가 한창이었다. 마을에서 만난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용역업체 한 직원은 “올해 여름이 오기 전부터 수로에 쌓인 쓰레기와 나뭇가지를 치웠다”며 “2022년 수해 이후 구룡마을에 콘크리트 배수로가 설치해 침수 피해가 많진 않았지만, 갑자기 비가 많이 오면 넘칠 가능성은 있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이강일(61) 구룡마을 주민협의회장은 “지난달 구청에서 축대를 설치했지만, 심한 폭우에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장마철이 끝나도 강한 비가 오기 때문에 침수 취약지역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노후 배관 교체, 배수구 청소, 빗물받이 점검 등 사전 조치가 가장 중요하다”며 “장기적으로는 하수도 용량 확대, 빗물 터널 설치 등의 방안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경진 김이현 임송수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