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해산할 힘도 없고

입력 2025-07-22 03:07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남북왕국 시대에 등장하는 성경 인물 중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려고 애쓴 참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나라를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순수하고 충성스럽게 이스라엘을 잘 세워보려던 그의 계획은 항상 잘 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위협에서 애굽을 외교적 지렛대로 이용해 벗어나려 했는데 그것이 탈이 났습니다. 앗수르의 산헤립은 이 일로 올라와서 유다의 몇 성읍들을 정복했고 그의 신하인 랍사게가 와서 하나님의 이름까지 모욕하며 협박했습니다. 히스기야로선 이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을 겁니다.

히스기야는 이 상황을 놓고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환난과 징계와 굴욕의 날입니다. 아이를 낳으려 하나 낳을 힘이 없는 산모와도 같습니다.”(사 37:3·새번역) 우리 인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히스기야처럼 무력감을 느낄 때가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힘이 다하도록 수고하며 살아내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어렵고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이 같은 삶을 어떻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요. ‘해산할 힘이 없는 산모’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두 가지 태도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는 나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겁니다. 히스기야는 자신과 이 이스라엘의 상황을 “아이를 낳을 힘이 없습니다”라는 비유처럼 난산의 상태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는 히스기야에게 분명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사 31:1) 그런데 히스기야는 그동안 그 말씀을 흘려들었던 겁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데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의식적 자기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해산할 힘도 없는 상황, 즉 앗수르의 침공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원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타이밍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안 될 때입니다. 우리는 상황들 앞에서 무엇을 직시해야 할까요. 우리의 무능력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는 크리스천은 항상 주님께 기도하려 합니다.

해산할 힘이 없는 산모 같은 우리에게 필요한 두 번째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절박함입니다. 랍사게는 수차례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모욕하며 이스라엘을 마음을 위축시키려 합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절박하게 나아갑니다.(사 37:14~15) 여러분도 삶의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이런 절박함이 있습니까. 성도님들의 마음과 시선은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절박한 태도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핵심 태도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이에 앗수르의 산헤립 왕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사 37:36~37)

하나님은 그 누구보다 우리가 해산할 힘이 없는 대상인 걸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싸워주십니다. 승리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선 “주님께 가까이 붙어 있으라”고 명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하나님께 대한 절박함이요 간절함입니다.

최정권 분당다함교회 목사

◇분당다함교회는 분당우리교회 ‘일만성도파송운동’으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동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각 사람을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고자 몸부림치는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