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노동하다 학교 들어와 처음 공부해보니 행복해요”

입력 2025-07-21 03:06
지난 15일 미얀마 접경지역인 태국 매솟의 맥컨켄 난민학교에서 경북 경산 은혜로교회의 화덕신(사진 왼쪽) 사모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이은숙 진량제일교회 사모가 찬양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가면 자물쇠로 잠긴 오두막에서 홀로 남겨져 있더라고요. 타국에서 자녀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인신매매 같은 범죄 때문에 안전하지 못하니까….”

미얀마 동부 카렌주와 태국 북서부 딱주와 맞닿은 태국 농촌 마을인 매솟에서 지난 16일 만난 신정호(56) 선교사는 미얀마 난민과 이주민이 다니는 난민학교(Learning center)를 2013년 설립해 운영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 군부 정치로 인한 쿠데타, 내전을 피해 본국을 떠나 이웃 나라의 접경에서 불안정하게 살 수밖에 없는 부모와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였다.

신 선교사는 20년 전부터 태국 내 미얀마인을 위한 교회를 세웠다. 12년 전부터는 매솟의 교회를 활용해 난민학교를 운영해왔다. 그가 개척하거나 함께해 온 교회 6곳이 기꺼이 나서주었다. 매솟은 지리적으로는 태국 영토에 속하지만 2만여명이 거주하는 태국 현지인보다 미얀마 이주민이 10배 이상 산다고 알려져 있다. 태국과 연결된 대표적 접경 지역으로 미얀마 난민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신 선교사와 진량제일교회·은혜로교회 등 경북 경산의 교회 2곳, 기아대책이 함께 선교 프로젝트 ‘회복’ 단기 선교팀을 꾸려 전날 오전 방문한 체디코 난민학교도 그중 하나다. 유치원부터 초등학생까지 미얀마 아이들 170여명이 작은 교실에 모여 수업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이곳 학교는 배움터를 넘어 안락한 보금자리였다. 돈을 벌기 위해 방콕 등 도시로 떠난 부모와 떨어진 아이들이 학교에서 숙식을 하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8살 애니와 에스더시는 교회 건너편 2층 공간을 보여주며 자기 방이라며 소개했다. 나무 바닥에 얇은 매트리스가 전부였지만 두 아이에겐 평안과 안식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신 선교사는 “이곳 교회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부모 없는 아이 3명과 2명을 각각 입양해 키운다”며 “가진 것이 넉넉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애쓴다”고 했다. 기아대책은 2023년 12월 설립된 미얀마 미야와디센터를 통해 아동 결연뿐 아니라 교실·기숙사 건축, 통학 차량 지원 등으로 매솟 난민학교를 돕고 있다.

지난 16일 매솟의 매타오 난민학교 안 교회에서 학생들이 기도하는 모습.

매솟 난민학교 6곳에서 공부하거나 숙식하는 미얀마 아이들은 1000명이 넘는다. 단기선교팀은 지난 15일부터 이틀간 5곳을 방문해 학생 수백명을 만났다. 가장 먼저 찾은 맥컨켄 난민학교에선 두 교회의 사모가 즉흥 찬양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은혜로교회 화덕신 사모 연주에 성악을 공부한 이은숙 진량제일교회 사모가 찬송했다. 이 사모는 아이들에게 “저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어렵게 자랐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학생들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난민학교는 난민이나 이주민 출신 미얀마인의 끊임없는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 걸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에 교사나 교회 교역자들이 픽업트럭을 개조한 통학 차량으로 등하교를 시킨다.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매솟에 세워진 그레이스신학교를 통해 매년 교역자도 배출되고 있다.

해와 비를 겨우 막을 수 있는 지붕과 벽만 갖춘 공간이 교실로 쓰일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지만 아이들의 꿈은 무럭무럭 자랐다. 매카사 난민학교엔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고졸학력인증 시험(GED)를 공부하는 10대도 있었다. 지난달 시작된 새 학기부터 체디코 난민학교에 등록한 지민퓨(15)군은 “얼마 전까지 막노동을 했지만 처음 공부해보니 행복하다”며 음악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단기선교팀은 난민학교 학생 가정 2곳을 찾아 함께 기도하기도 했다.

신 선교사와 현지 교회, 기아대책은 현재 초등학생 위주의 교육을 확장해 고등 교육과의 연계, 직업학교 설립 등에 대한 청사진을 구상하고 있다. 기아대책 이대영 미얀마 지부장은 “이제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에서 적응하고 자립할 수 있는 고민을 하고 있다”며 “교사 교육과 지원 등 부족한 게 많지만 아이들이 가능성과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1인당 GDP가 1200달러가 채 되지 않는 동남아시아의 최빈국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길 기도한다”고 했다.

신 선교사는 아내 이은영 사모와 함께 매솟뿐 아니라 미얀마 냐웅쉐 등 경제적 자립이 필요한 미얀마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두 사람은 미얀마인을 대상으로 한 오랜 선교로 미얀마어에 능통하다. 신 선교사는 “생일축하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며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단기선교에 참여한 두 교회의 담임 목사는 그레이스신학교와 현지 교회에서 각각 설교를 전했다. 진량제일교회 김종언 목사는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시골교회의 모습과 미얀마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와 학교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한 손길이 절실한 곳을 이번 기회로 알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은혜로교회의 이창용 목사도 “여러 난민학교를 방문하면서 ‘이 아이들이 미얀마의 미래이겠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며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절을 지나온 한국이 미얀마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매솟(태국)= 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